<천재들의 대참사>, 이렇게 재미있으면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ㅋ
여기 어쩌다 스타트업에 들어갔던 한 남자가 있다. 다른 신입들과 차별점을 꼽자면 '이미 머리가 회색으로 물든 나이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그 자리에서 유일한 대장내시경 검사 경험자'이라고 자조할 만큼 연륜이 있는 나이라는 것.
호기롭게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탐험에 나선 그였지만, 나이 때문이었을까, 마인드셋 문제였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상황이 전부였을까. 그는 그 스타트업 '패거리의 일원'이 되고자 열망했지만, 실상은 '매번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이방인'이 되곤 했다. 생각만큼 그 '교주'와 '교리'의 세계에 충분히 빠져들지 못했다.'투덜 거리는 노인네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반쯤 눈을 감고 '예스'를 외치며, 겨우 허우적거리면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었다. 그의 말마따나 반백살이 되어 뒤늦게 뛰어든 새로운 세계에서 '개인의 재창조라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을 뿐. 게다가 냉소적인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온 그에게는 '그 누구도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큰 비밀'인 스타트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고군분투할 무렵, 어떻게 만나게 된 한 스타트업 CEO가 이렇게 조언한다.
“인류학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이제껏 접해본 적 없는 생소한 문화권에 들어가 그들의 의례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말입니다. 나중에 그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꽤 흥미로울 것 같은데요."
그는 얼마 뒤 퇴사를 했고, 스타트업의 경험담을 책으로 낸다. 2016년 발간된 <천재들의 대참사>. 원제는 <Disrupted: My Misadventure in the Start-up Bubble>. 책 표지의 유니콘의 휘둥그레 놀란 표정만 봐도 책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뉴스위크'에서 기자로 일하던 '댄 라이언스(Dan Lyons)'이다.
댄은 '큰 걱정거리 없는 무난한 삶'을 이어오던 50대 초반, 예상치 못한 정리해고 통보를 받는다. 서둘러 여러 자리를 알아보다가 'IPO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내 주머니에 약간의 현금을 채워줄' '허브스팟'이라는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그렇게 1년 6개월간 허브스팟에서 일하면서 벌어진 다양한 일들을 담대하게, 위트 있게, 시니컬하게 쓴 포복절도 목격담이 <천재들의 대참사>라는 책이다.
아니, 이런 종류의 대참사 스토리는 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걸까? 스타트업의 열정과 몰입, 역경과 실패를 이겨낸 7전 8기 성공에 대한 책들은 꽤 들어봤어도 이렇게 어떤 기업과 인물을 까대는 책이 그대로 나올 수 있다고? 게다가 이런 게 제대로 된 풍자의 맛인 건지, 정곡을 찌르는 시니컬한 풍자들은 웃지 않고 배길 수 없어 읽는 내내 낄낄 껄껄거리고 있었다. (아 물론 진지하게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마지막 부분은 빼고...) 블랙 코미디가 이렇게 재미있는 장르인가,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블랙코미디의 팬을 하련다. ㅋㅋㅋㅋㅋㅋㅋ
어떤 부분은 깊이 공감하기도 했고, 특정 파트에서는 본인이 짊어져야 할 몫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가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결국 그 깨달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승화시키는 그의 작업은 정말이지 너무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커리어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곤 한다. 저마다의 노력으로 새로운 걸 얻지만, 그 정도와 깊이는 모두가 같지는 않으리라. 혹시라도, 40-50대에 스타트업으로의 새로운 입성을 기대하고 있는 '꼰대'들이 있다면, 그 새로운 시작 앞에 한번 읽어보면 좋을 만하다. 저자의 절박함, 설렘, 좌절감과 무기력함, 분노, 그리고 끝내 이를 승화하는 새로운 감정을 재미있게 느껴볼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ㅋㅋㅋ
(일하는데 나이가 뭐 별거냐 싶지만, 가끔은, 별거긴 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쌓아온 삶과 일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말만큼 쉽지 않다. 진심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생각해도 실소가 나는 유쾌한 책. 내년에 또 읽어야지.
P.S - 책에서 잠깐 나온 앤드리슨호로위츠 (a16z) 얘기가 너무 흥미로웠다. 벤처 캐피털이 본업인데, 홍보의 가치를 간파하고 '콘텐츠 공장'을 만들었다는 말이 너무 신선하지 않나? 오우? +_+ 그리고 보니, 최근 a16z에서 나오는 다양한 리포트를 본 기억도 난다. 벤 호로위츠가 궁금해져서 <하드씽>을 바로 구입했다. 이 책은 또 얼마나 재미있으려나.
그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늘 해오던 방식이 유지되기를 원했다. 늘 해오던 방식을 만든 것이 그들이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요란스럽게 나타나 제안서 따위나 작성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훈계나 하는 나 같은 침입자나 외부인이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는, 자기들의 회사였던 것이다.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이른바 ‘멍청이 폭증 bozo explosion’이라는 현상을 종종 언급하곤 했다. 회사 창립 초기에 입사했던 그리 뛰어나지 못한 직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급하고 결국 그리 뛰어나지 못한 사람이 부서 전체를 지휘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대개 그런 식이었다. 크레이엄과 윙맨은 자신들보다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충성스러운 직원들만 주변에 두었다.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만 누구의 의사결정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책임자인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고 동시에 모두의 책임이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대기업 고객에 집중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는 지침이 전 직원들에게 하달되었다. 그 결정은 확정적이며 결코 변경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주 뒤, 회사 방침은 소기업에 대한 판매 증진으로 회구하고 말았다.
나이 든 직원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가장 큰 역효과는 내 나이가 기업문화에 대한 적응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었다. 허브스폿과 같은 인터넷 기업에서 기업 문화에 대한 적응은 되면 좋지만 안 돼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스타트업 사람들은 “기업 문화에 대한 적응”의 중요성을 상당히 자주 언급한다.
'쿨에이드 마시기 Drinking the Kool-Aid'는 평범한 사람이 조직에 동화되면서 결국 광신도로 변해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말로,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다. 애플과 구글은 쿨에이드 드링커들이 넘쳐나기로 유명한 조직이다. 하지만 IT 스타트업 대두분이 그러해 보였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는 단지 영리만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이 하는 일에는 의미와 목적이 있고 회사에는 사명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회사가 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일원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IT 스타트업에 취업하기 위한 대전제인 것 같았다. 그런 조직과 실질적인 사이비 종교 집단의 경계는 그리 명료하지 않았다. 충성스러운 직원과 세뇌당한 광신자 간의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지점에서 사람은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것인가? 그 경계 역시 명확하지 않다. 우연히 그렇게 될 수도 있고, 필연일 수도 있다. IT기업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사용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기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들만의 특별한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의 예일 것이다.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깔아놓고 그 위에 그들의 일이 매우 의미 있는 무엇이라고 믿게 만들 만한 신화를 창조해 놓으면 금상첨화였다. 밀레니얼 세대는 돈보다는 사명감에 더 크게 동기를 부여받는 성향이라고 추정되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사명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이런 직장에서 일하게 도니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일깨워주면 되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하버드 입학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하면서, 각자가 지닌 ‘초능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중대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선택된 인재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회사를 하나의 ‘팀’으로 만들고 팀을 상징하는 고유한 색깔과 로고를 정해주면 된다. 모든 직원들에게 똑같은 모자와 티셔츠를 나누어 입으면 된다. 문화코드도 지어내고 모두가 사랑하는 회사 만들기에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된다. 그러면 누군가는 부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대롱대롱 매달아 두면 끝이었다.
안드레센과 호로위츠는 투자자금을 과도하게 내놓는다는 평판을 얻었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여타 벤처캐피털에 비해 30퍼센트나 높게 기업 가치를 산정한다고 했다. 홍보 가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영입한 첫 번째 파트너는 경험이 많은 실리콘밸리 홍보 전문가로 공격적 성향이 강한 스타일로 유명한 덴마허스(Margit Wennmachers)였다. 이후 그들은 더 많은 홍보 담당자를 고용했고 블로그 기사 작성, 팟캐스트, 시장분석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담당할 저널리스트와 연구원들 또한 속속 합류시켰다. 그들만의 작은 콘텐츠 공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은 허브스팟에 국한된 내용만 다루는 게 아니다. 이 책은 50대 나이에 재창조하고 새로운 경력을 쌓으려 애쓰는 일이 어떠한지, 특히 나이 든 직원에게 대체로 적대적인 업계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