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SF 소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다큐멘터리'
2년 전 가을, 한참을 망설이다가 책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던 책상으로 다가갔다. 고작 입사 한 달째였고, 생각과 의견이 곧잘 엇갈려 부담스러운 사람의 자리였다.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던 대표에게 말을 걸었다.
"대표님, 왜 예뻐야 할까요? 사회적 맥락을 봐야죠. 예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보면 어때요?"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한 건 아닌데, 우리가 서로 잘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왜 모호하게 바꿔야 하죠? 그리고 왜 예쁘면 안 되죠? 민희 님은 친구들에게 예쁘다는 말 안 쓰나요?"
(*참고로 이는 제품에 대한 내용으로, 어떤 특정인을 지칭한 표현은 아니었다.)
나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본질보다 맥락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대표는 언어가 받아들이는 사람들위 해석의 영역이라고 봤고, 그 어떤 것보다도 본질이 우선이라는 신념이 강했다. 나는 맥락상 우리 사회의 젠더 이슈를 말했고, 대표는 본질로서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해서만 인정을 하고 있었달까.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고, 그새 다른 직원들이 둥그렇게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예쁨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맥락을 추가로 말했고, 다른 이는 우리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는데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본인의 바운더리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의견이라며 고민해 봐야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절대적으로 맞고 틀린 것은 없다며, 토론에 임하는 건강한 자세(!)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번의 논쟁으로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대표는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이때의 논쟁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SF 소설을 만났다. 테드 창의 SF 소설집 <당신 인생 이야기>. 총 8편의 단편 소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이야기다. 제목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Liking What You See: A Documentary)'. 사실, 그때의 그 대표가 보내온 책이기도 했다.
'만약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이 핵심으로,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윤리를 책임질 때를 그린다. 외모지상주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사회를 보여주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펼쳐준다.
펨블런 대학교에 막 입학한 타메라의 생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메라는 어렸을 때 '칼리' 처치를 받았었고, 이 대학에서는 마침 칼리 의무화를 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칼리는 얼굴을 인식하지만 그 차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심미적 반응도 경험하지 않는, '극히 선택적인 마취제'의 일종이다. 누가 예쁜지, 누가 못생겼는지 느끼지 못하게 해 주는 거다.
칼리 의무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모 지상주의는 차별과 편견을 낳고, 교육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기술이 개입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칼리는'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조수단'으로 '표면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게' 도와준다고 했다. '외모가 매력적이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에 아름다움이야 말로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도 설득력이 있었다. 칼리는 일종의 '눈가림'일 수밖에 없으며, '경험의 폭을 줄이는 방법으로 사람을 해방시킬 수는 없다'라고 했다. 어떤 차별이 실제 차별인지 알려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교수는 '칼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과 똑같다'며, '아름다움으로부터 우리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흐아, 너무 재미있다. 이 소설. 읽을 땐 한참 빠져서 읽어 내려갔는데, 책을 놓고 나니 묵직한 생각거리가 남아있다. 윤리를 과학으로 교정할 수 있을까? 또는 해야 할까? 차별과 편견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모두의 개성을 지우고 '똑같음'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윤리를 책임진다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인간은 불완전하다. 오류를 범한다. 그 부족한 틈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 안에서 헤매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실수하고, 깨닫는다. 틀릴 수 있고, 잘못할 수 있다. 생각하고 토론한다. 잘못을 인지하고 개선할 때 성숙한 사람으로 나아간다.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성장이고 인생이다.
나는 칼리가 정말 현실화된다고 해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테크놀로지로 인간의 윤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문제의 인지와 열린 토론일 뿐. 이 소설의 말미에서 칼리 의무화를 옹호했던 마리아도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여기저기서 겉모습의 가치에 관해 사람들이 토론하기 시작했고, 이들 대다수가 칼리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물론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 ‘눈가림’은 결코 해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칼리는 나쁜 것뿐만 아니라 좋은 것까지 제거해 버립니다. 차별의 가능성이 있을 때도 제대로 작동한다고 할 수 없고, 그냥 아름다움을 아예 인식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 성숙함이란 차이를 눈으로 보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382, 제푸 윈스럽, 3학년, 학생토론회에서의 발언)
아무리 이 세상이 선의로 가득하다 해도 사람들은 외모지상주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평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방의 외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동적인 반응만은 억제할 수 없습니다. (…) 외모가 매력적이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잘생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유능하고 좀 더 정직하며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지만, 그들의 외모는 우리에게 그런 인상을 줍니다. 칼리는 눈가림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잇는 것입니다. 칼리는 당신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아데시 싱, 3학년)
가상의 여자친구를 살아있는 여자친구보다 더 선호하는 남자들에 관해서는 들어보셨겠지만, 영향을 받은 것은 그들만이 아닙니다. 화려한 미모의 디지털 유령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 세계의 인간관계는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글자 그대로 이십사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지 않는 한 절대로 떨쳐버릴 수 없는 마약이기 때문입니다. (전국칼리아그노 시아 협회 회장 윌터 램버트 강연)
아름다움은 그것을 감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것을 지니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도 같은 기쁨인데, 칼리 운동은 여성이 자신의 용모에서 기쁨을 얻는 행위 자체에 대해 죄악감을 느끼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의 성을 억 합하려는 또 하나의 가부장적 전략에 불과하고, 또다시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그 전략에 넘어갔습니다. 아름다움이 지금껏 억압의 도구로 쓰여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름다움을 아예 말소해 버리는 것은 결코 해답이 아닙니다. 경험의 폭을 줄이는 방법으로 사람을 해방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캐시 미나미, 3학년)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마법의 주문이라는 얘기 기억하세요? 그게 있으면 당사자는 유리해지니까, 그걸 악용하는 일도 쉬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칼리가 하는 게 바로 그런 종류의 주문에 면역력을 심어주는 일이에요 (…) 만약 제가 개럿과 다시 잘 되게 된다면, 저는 공정한 방법을 쓰고 싶어요. 개럿이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말얘요. (…) 칼리를 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도 또 있어요. 그 화장품 회사들이나 다른 기업들은 단지 소비 욕구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을 뿐이에요. (타메라 라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