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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경 Sep 09. 2023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

에필로그 / 내게 있어 여행이란..


내게 있어 여행이란..


어린 시절... 파일럿이었던 아빠에겐 여행가방이 따로 있었다.  

그저 언제고 들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여행가방.

아빠가 긴 비행에서 돌아와 가방을 풀 때마다 난 항상 설레었고,  매번 가방을 여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 안엔 언제나 내게 줄 선물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선물보다도 난 아빠의 그 오래되고 낡은 여행가방이 부러웠다.

그 시절부터 내 로망은 오래되어 낡고 색 바랜 여행가방을 갖는 것이었다.


대학시절 선배 언니한테 전화가 오면 엄마는 항상 물어보셨다.

또 놀러 가니?

여성에게 엄격하던 그 시절... 심지어 수학여행조차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해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 만큼 보수적이던  70년대에도 난 방학마다 놀러 다녔다. 외국을 내 집 드나들 듯 드나들던 아빠는 딸인 내게 여자라는 이유로 구속하는 법이 없으셨다.


유학 준비를 했을 땐 비행기 티켓을 사다 주셨고, 엄마의 반대와 억지로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 결국 유학을 포기했을 땐, 내게 조용히.. 가지 그랬느냐고 말씀하시며 아쉬워하셨다.


평생을 세상을 떠돌아다닌 아빠를 보며 자라서 그런 걸까, 아님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그런 걸까...

젊은 시절부터 난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다.

너무나 절하게...

유학은 어쩌면 공부에 대한 욕심보다도 이곳을 떠나 다른 세상에서, 내 온몸으로 세상을 겪으며 살아내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었던걸 지도 모르겠다.




큰아이가 6살, 작은 아이가 5개월.  남편이 위암판정을 받았다.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겨우 수술을 하고, 꿰맨 상처 때문에 팔을 뻗어 지하철 손잡이도 잡지 못하는 남편을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 차려주고, 간식 싸서 회사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와 다시 점심도시락과 오후간식 싸서 가져다주고 오면 금방 또 남편의 퇴근시간. 다시 저녁밥을 준비하고.. 5개월 된 막내는 아빠의 간식인 죽을 이유식으로 먹으며 자랐다.

2년간 단 한 끼도 밖에서 밥을 안 먹고, 일반음식도 아닌 완전 자연채식으로 하루 5끼를 꼬박꼬박 먹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시간들이었다.


엎친데 덮친다고 IMF가 터지면서 보증 섰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IMF로 남편 회사는 2천 명이던 직원을 1천 명으로 감원한다고 했다. 뉴스엔 감원당하고 집에 알리지도 못하고 공원벤치로 출근하는 남자들.. 고개 숙인 남자들이라는 대문짝만 한 기사 제목이 신문 앞면을 장식했다.


암수술로 비쩍 말라 야근도 못하는 파리한 얼굴의 남편.. 남편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그런 일 있음 절대 벤치에서 종일 떨지 말라고.. 내게 얘기하라고.. 저녁마다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는 남편의 표정을 살피던 날 들.. 표정이 어두워 보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등이 시린 날 들이었다.


이자는 급등하고, 1년간 18% 의 이자를 갚느라 월급의 반이 날아갔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다, 집을 팔자. 집 살리겠다고 빚 갚느라 숨 막히게 살면, 나중에 그 시간은 누가 보상해 주나..

과천의 알토란 같은 아파트를 똥값에 팔자마자 집값이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다. 빚 갚고 남은 돈으로 작은 집을 사놓고, 우린 전세를 살았다.  그렇게 몇 년.. 진창에 발이 빠져 허우적거리듯 그렇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배낭여행을 가라며 오백만 원을 건넸다.  

큰아이가 열 살. 작은 아이가 5살.

배낭여행을 간다고 하자 엄마의 첫마디는 미친년...이었다.


막연한 동경만 있을 뿐 아이와 단 둘이 하는 첫 유럽배낭여행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소심하고, 겁 많고, 예민하고, 잠자리 까다롭고, 심지어 서울시내 지하철에서조차도 갈아탈 때마다 헤매는 길치에 지도치, 읽는 건 대충 하겠으나 듣고 말하는 건 자신도 없는 영어 미숙아...  

하지만 이런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그 막연함과 두려움이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너무너무 무섭고 두려워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었다.

단체여행이란 내 사전엔 없으니 이 두려움을 넘지 못하면 난 앞으로도 혼자는 절대 떠날 수 없으리라..


젊어서 여행을 시작했다면 달랐을지 모르지만 나이 사십 넘어 혼자 하는 여행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이 산을 넘지 못한 채 영원히 막연한 동경과 아쉬움을 품은 채 어쩔 수 없이 가이드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레니엄을 한 해 앞둔 1999년.

지금처럼 여행정보를 얻기도 여의치 않고, 론리플래닛은 커녕 국내 여행책자도 변변치 않던 시절이고, 유로화도 통용되기 이전이었다. 한국은행에 가서 각 나라별로 화폐를 바꿔 복대에 넣어 허리에 차고 열 살짜리 아이의 손을 잡고 떠났다.  아이와 함께 간다는 것도 위안이 될 만큼 여행은 엄두가 안 났다. 돈은 넉넉하지 않았다.  남편이 준 돈으로는 겨우겨우 여행하기에도 모자랐고, 마이너스 통장을 바닥까지 긁어 떠났다.


그렇게 첫 배낭여행을 시작했고, 한 달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와 얼싸안고 무사귀국을 축하했다. 비행기 티켓과 호텔예약을 했던 여행사에서는 중년주부가 아이만 데리고 혼자 여행하는 건 처음 봤다며 돌아와서 같이 책을 내자고 했지만, 내 귀엔 그런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살아서 무사히 돌아오면요...


여행지를 정하고, 첫 도착지인 런던과  체코, 그리고 파리의 숙소는 여행사에서 예약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유스호스텔을 이용하기로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미리 예약은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유스호스텔은 체크인 시간 전에 줄 서 있다 순서대로 입실이 가능했고, 내가 원하는 2인실은 직접 전화로 가능여부를 묻고 예약을 해야 했다.  유럽에 도착해서야 잘 들리지도 않는 공중전화 너머 목소리를 단어 몇 마디로 어림잡아 겨우겨우 예약을 하며 더듬더듬 다녔다.


시간은 미리 끌어 쓸 수 없지만, 돈은 끌어다 쓸 수 있다...


첫 배낭여행 후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비행기 값만 마련해서 떠났다.

몇 년간 안 쓰고 열심히 모은 돈은 남의 빚 갚는 데로 다 날려버리고, 그간의 내 시간은 누가 보상해 주나...

돈을 모아 여행 가겠다는 생각은 이후론 싹 접어버렸다.

시간은 미리 끌어 쓸 수 없지만 돈은 끌어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엔 한 번도 목돈이 있어서 여행을 나갈 수 있는 적은 거의 없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놓으면 엉뚱한데 쓸 일이 꼭 생긴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여행하려고 따로 일부러 돈을 모으지는 않았지만 지출의 우선순위는 항상 여행이었다.

일단 카드로 비행기 티켓부터 끊고 나서 여행부터 하고 돌아와서 갚는 식이었다.

 



아이들이 다 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음에 죽을 때 난 뭐가 제일 후회될까.. 하는 거였다.

... 혼자 자유롭게 떠나지 못한 것..

죽을 때 정말 정말 눈물 쏙 빠지게 후회할 것 같았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아이들과 다닐 때의 호의적인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아파트를 팔아 지인들과 함께 땅을 구입해서 집을 짓고 있던 때였다.  집이란 게 원래도 예상치 못한 비용이 더 들어가게 마련... 친정에서 준 돈과 내가 모은 돈을 집 짓는데 보태지 않고 여행비로 꼭 쥐고 있는 내게 남편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편하고 섭섭한 내색을 비쳤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지금부터 십 년간 여행 다닐 거야. 나 지금 여행 못 다니면 이 담에 죽을 때 너무너무 후회할 거 같아..

예전에 유학 가려고 할 때 엄마의 반대가 너무 심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때 너무너무 무서웠어.  

집에서 보내줘도 유학 가면 고생인데,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떠나 내가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무서워서 일주일 남겨놓고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게 너무 후회돼.  또다시 내 인생에서 그렇게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 만들고 싶지 않아. 남편은 말을 삼켰고, 표정 없는 얼굴로 보내주었다.


여행을 상상하는 순간은 행복한 기운과 기대감으로 온몸이 저릿저릿할 만큼 설렘으로 들뜬다.

여행지를 정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여행지에 관한 책들을 읽고, 준비하는 시간은 늘 설레고 행복하다.

하지만 여행날짜가 다가올수록 그 설렘으로 가득하던 가슴은 걱정과 두려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일정표를 짜서 매일매일 집안일을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고 스트레스는 늘어만 간다.

일주일만 늦게 떠나면 좋을 텐데.. 하루만 더 있어도 좋겠는데...

결국 떠나는 날이 닥치고, 온몸의 신경은 조금만 건드려도 끊어질 듯 긴장으로 날이 선 채 출발한다.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다고 그다음부터는 두렵지 않을까...

난 매번 두렵다.  아무리 여러 번  여행을 다녔어도 아직도 떠나기 전엔 악몽을 꾸고, 온갖 상상을 하며 걱정을 하고, 떠나기 전 해두어야 하는 집안일로 몸도, 영혼도 다 털리다시피 한 상태로 출발한다.


하지만 막상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걱정과 두려움은 따라 내리지 않는다.


여행을 나서면 난 비로소 내가 된다.  

그냥 나... 있는 그대로의 나...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역할로서의 나가 아닌 그냥 존재로서의 나...

누구를 위해 무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나만 생각하며,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나...  그 자유로움...


그 자유로움을 향한 지극한 간절함으로 두려움을 삼키며 길을 나선다..


이로써

<돌로미테.. 그 한 달간의 기록>을 마칩니다.

부디 저의 기록이 돌로미테를 향한 여정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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