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이라는 단어를 보면 저마다 떠올리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분명 존재한다. 나에게 하이힐은 ‘차별’과 ‘혐오’로 인식된다. 그 이유는 20여 년이 지난 과거에서 출발했고, 지금까지 가슴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지금, 선명한 그 날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염색체 돌연변이로 인해 근세포막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생성되지 않아 지속적인 근육의 손실이 발생하여 점진적인 근력감소로 인한 보행능력 상실, 호흡 근력 약화, 심장 기능 약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근육 장애'를 유전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 지금도 장애는 하루하루 심해지고 있으며,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지금보다 장애가 심하지 않았던 시기도 존재했다.
느리고 서툴지만 독립 보행이 가능했던 국민학생 때에는 자전거도 타고, 곧잘 뛰기도 했다. 다만, 뒤꿈치를 들고 배를 내밀고 걷는 근육 장애 초기 증상이 있었다. 그렇기에 허구한 날 넘어져 이마와 무릎에 상처가 사라질 일이 없었다.
추석 명절을 하루 이틀 남겨두고 크게 넘어져 무릎을 꿰매는 일이 발생했다. 상처가 추석 전까지 아물지 않아 실밥을 한 채로 할머니 댁에 갔다. 그곳에는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있었다.
모두 모여 TV를 보며 추석 음식을 먹던 중, 한 어르신께서 활짝 웃으시면서 "어차피 뒤꿈치가 바닥에 붙어있지 않으니 하이힐을 신고 다녀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주변에 계신 친인척들이 박장대소하며 "참, 좋은 생각이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 순간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커다란 수치심을 느꼈다. 너무 부끄러워 울음은 생각한 겨를도 없었다. 갑자기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모두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은 확신에 차 있었다.
하이힐 뒷굽에 심장이 콕 찍히는 느낌이었고, 커다랗고 시커먼 형상들이 자그마해진 저를 둘러싸고 비릿한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물속에 머리를 모두 넣으면 밖의 소리가 불명확하게 들리는 경험을 해보셨을 텐데, 그때의 느낌이 딱 그랬다.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었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은밀하고 사소하며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들 속에 차별과 혐오가 도사리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그마한 벽돌을 쌓아 올려야 높은 벽을 건설할 수 있듯이 거대한 차별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차별들의 합이다. 이웃 앞에 차별의 벽돌을 놓을지 말지는 이 글을 읽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우리는 결국 평등을 선택할 것이다.
켜켜이 쌓이고 쌓일 차별 앞에 이 땅의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그것은 차별이야!”라고 당당히 외치며, 앞에 놓인 벽돌을 치우라고 선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어깨 걸고 그 벽돌을 치우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하이힐이 새긴 오래된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신들의 유쾌하고 선량한 차별은 매우 성공적이다. 하지만 그 성공은 결단코 실패의 시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내 가슴에 성공적으로 새겨진 차별이 실패의 시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당장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길 바란다. ‘공정한 세상’과 함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