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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 May 07. 2024

최악임금제

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오른쪽에 빨간색 사람 형상이 있고, 왼쪽에 오른쪽 반쪽이 잘린 검정색 사람 형상이 있다.ⓒ김소하 작가


[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최악임금제 | 더인디고 (theindigo.co.kr)


[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최악임금제


얼마 전 참으로 황당무계한 소식을 접했다.

2025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개의를 앞두고 윤기섭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등 38명이 “민간 시장에서 최저임금법에 따른 동일 임금을 주는 경우 고용주는 노인보다 젊은 층을 선호하게 되고, 이러한 동일 임금 체계 속에서는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지난 2월 5일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다. 요약하자면,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최저임금을 주지 말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최저임금에서 제외된 존재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에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국가가 노동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1988년 정부는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최저임금제이다.


최저임금제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 임금 결정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여 최저임금을 정하고 사용자가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망인 동시에, 노동 소외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그렇지만 현행 최저임금법 제7조(최저임금의 적용제외)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 또는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해 ‘사용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으면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 근로자 현황’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 노동자는 2019년 8,971명, 2020년 9,005명, 2021년 9,475명, 2022년 8월 말 기준 6,691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레 장애인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도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 노동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2019년 38만169원, 2020년 37만1790원, 2021년 37만461원, 2022년 8월 말 기준 37만9622원으로 매년 최저임금 기준 20%에 불과하다. 이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는 헌법의 명령에 역행하는 것인데, ‘최저임금제’가 아니라 ‘최악임금제’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11월 장애인의 자립생활 기반 구축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임금 보전 정책을 시행하여 장애인의 최저임금을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후 2022년 9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이행 2·3차 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장애인을 개방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차별적 법률 폐지, 노동권 보장을 위한 효과적 조치 마련, 채용 광고·절차에서의 차별금지, 정당한 편의 제공 등을 실천하고 그 밖에 노동 및 고용과 관련한 권리를 보장하고 ‘최저임금법’을 재검토하여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등한 보수를 보장하고, ‘최저임금법’에서 배제된 장애인에게 보상금을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헌법,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국가권위원회에서 권고한 이상, 장애인을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방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 아울러 사람은 노동을 통해 삶의 만족감과 자아를 찾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사회적 존재로 나아간다.


고로 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노동할 권리가 실현되어야 하고, 적정 소득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온전히 도입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는 ‘최소극대화의 원칙’이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칙은 사회 전체 삶의 질이 개선되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배제된 계층의 삶의 질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의 권리가 한 걸음 나아갈 때,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도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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