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준비 - 의뢰인이 원하는, 토론자가 원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토론 준비는 대규모 원탁토론이라는 일의 설계와 같다. 이 설계가 치밀하고 구체적이면 설계를 따라 진행하기만 하면 되지만 준비가 부실하면 진행 과정과 결과 모두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거나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대규모 원탁토론은 그 규모로 인해 필연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의뢰인(스폰서)이 등장한다. 의뢰인은 그가 가진 필요에 의해 토론을 진행 하며 그 필요가 대규모 원탁토론이 진행 되었다는 보도 자료인지 참가자들의 토론하는 모습인지 참신한 아이디어인지 첨예한 토론 끝에 도달할 결론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에 따라 토론 주제에 대한 질문도 토론 계획도 많이 달라진다.
토론을 했다. 라는 행위가 중요하다면 많은 참가자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도록 공연무대를 준비하고 대중이 관심이 많은 주제를 채택해야 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진행한 토론 결과를 얻어내고 싶다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진행한 대규모 원탁토론은 대부분 지자체의 의뢰로 진행 되었고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정책 아이디어를 도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토론 결과는 지자체 장의 공약 사항이거나 이미 검토 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이거나 하는 아이디어 였다.
이는 토론 참가자들이 대부분 지자체에서 동원하기 편한 사람들인 통장, 반장이라는 이유도 있고 토론을 진행하는 퍼실리테이터의 역량이 부족한 이유도 있고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대체로 비슷한 이유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의 대규모 원탁토론은 참여한 지역 주민들 간의 토론을 통해 숙의가 이루어지는 것, 지자체에서 진행할 여러 사업 중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숙의의 경우엔 재미있는 사례가 있었는데 과거 수원역 앞의 도로 공사로 인해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수원에서 진행된 대규모 원탁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토론을 진행 했던 한 테이블에서 수원에 살며 가장 불편한 부분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수원역 앞의 교통을 이야기 했으나 더 나은 수원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다문화 가정을 배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의뢰인 중엔 대규모 원탁토론을 진행하며 상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가 쏟아지거나 참여자 간의 열정적인 토론을 통해 유의미한 결론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바라는 이들도 있다. 특히나 대규모 원탁토론을 처음 진행하는 경우거나 실적이 간절한 이들과 일을 하면 그런 모습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대규모 원탁토론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부분은 명확하게 존재한다. 특히,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적인 경우엔 이룰 수 없는 부분이 더욱 명확해진다.
대규모 원탁토론은 의뢰인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다.
하지만 실제 토론 참가들이 없다면 완성될 수 없다.
실제로 지자체에서 대규모 원탁토론을 처음 진행하면 그 결과나 과정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매우 만족해 하며 돌아간다. 소감을 받아보면 '말할 수 있어 좋았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가 좋았다.' 라는 이야기가 많다.
대체로 처음, 두 번의 대규모 원탁토론은 참여 하는 것으로 만족감을 나타내나 세 번째 정도가 되면 참여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처음, 그리고 다음 토론회에서는 어께에 들어간 힘을 뺄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이 실제로 반영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당신이 마주하는 의뢰인이 대규모 원탁토론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의뢰인이 과한 기대를 하고 있다면 그 기대를 낮춰줄 필요는 있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