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월전쟁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북베트남은 강경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돈이 많은 화교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했으며, 국경문제에서 소련을 적극 지지하며 그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바로 자신들이 독립하고 통일을 하기 위해 많은 도움을 받은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베트남에게 상당한 불만이 쌓이게 되었고 당시 중국 지도자였던 등소평은 미국 카터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작은 친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엉덩이를 걷어차 주어야겠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인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하지만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자문화권의 국가로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성이 깊은 나라입니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 중에도 중국에서 많은 지원을 받을 정도로 우호관계가 나름 좋은 국가였죠.
하지만 역사적으로 중국과 독립과 복종관계가 반복되다 보니 베트남 국민들이 중국에 갖는 감정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으로부터 승리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점령하자 곧 오랜 시간 묵어 있던 반중 감정을 드러내버립니다.
남베트남의 상권을 장악한 북베트남은 당시 베트남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재산을 빼앗고 추방시켜 버리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죠.
이는 곧 중국 정부를 자극하는 일이 되었으며 베트남과 중국의 외교적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던 1978년,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합니다.
19세기 전반까지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직접 지배를 받는 속국으로 독립을 했다고 해도 베트남은 항상 캄보디아를 우습게 보았죠.
문제는 베트남이 붕괴시킨 당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은 중국의 지원을 받는 정권이었고 중국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친중 정권을 붕괴시킨 베트남에 엄청 화가 난 중국이었습니다.
베트남과 중국은 역사 및 국경문제 등으로 국지적인 소규모 다툼을 자주 했던 터이기에 언제든 일촉즉발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죠.
더군다나 1969년 중국과 소련의 국경분쟁에서도 그냥 대놓고 소련을 지지했습니다.
그런 베트남이 마냥 좋은 소련은 은밀하게 베트남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죠.
중국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고 맙니다.
1979년 등소평은 “소련을 믿고 겁 없이 우쭐대는 ‘동양의 쿠바’를 혼내주겠다”라는 말고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 20만 병력과 수백 대의 탱크를 앞세워 베트남 국경 지대를 침공하기에 이르죠.
이 전쟁이 바로 중국과 베트남, 베트남과 중국의 전쟁입니다.
방어와 반격을 해야 했을 베트남은 중국의 병력에 넋이 나갔을 겁니다.
그렇다고 전쟁에서 미국을 이긴 베트남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바로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트남 병력이 캄보디아에 있었습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게 1978년 12월이었고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한 게 1979년 1월이었으니 베트남 병력이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었던 것이죠.
이대로라면 무조건 중국이 베트남을 점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캄보디아에서 철군하는 병력의 시간과 중국군이 국경을 넘어 활보하며 파괴되는 시간은 야속하게도 반비례했습니다.
베트남은 묘수를 생각해봐야 했고, 미군과의 전쟁 뒤 퇴역한 군인들을 다시 징집해서 민병대를 꾸립니다.
정규군과 함께 약 10만 명 정도의 병력으로 중국군과 맞서게 되죠.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다시 징집된 민병대의 전투력은 굉장했습니다.
또한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에 단련돼 있었기에 초반 중국군은 고전을 하게 됩니다.
화력에서도 중국은 현대화에 뒤처져 있었던 반면,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 중에 입수한 무기가 상당했기에 무조건적인 중국군의 승리는 없었죠.
등소평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철군하면 전쟁에서 패배한 패전국이 될 것이란 걸 인지 했을 겁니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어느 날, 중국이 갑자기 “목적을 달성했다”며 철군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베트남은 중국이 철군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하기에 이르고 중국 역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어버리죠.
중국은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 군대를 철군하는 게 목적이라고 전쟁의 이유를 말합니다.
어찌 되었던 1989년, 베트남 군대가 캄보디아에서 철군을 하였기는 하지만 중국의 침략전쟁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결국 베트남은 미국과 프랑스, 중국을 전쟁으로 유일하게 이겼다는 모습으로 보이니 말이죠.
중국군 2만 6000명과 베트남군 3만 명이 사망한 전쟁의 기간이 딱 17일이었다는 것을 가만하면 절대 작은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베트남은 정치사상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죠.
국제관계는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전쟁이었습니다.
미국과 벌인 베트남 전쟁 당시 중국은 베트남을 지원했죠.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을 복속시키기 위해 중국은 끊임없는 침략과 잦은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물론 언제나 독립과 자주권을 행사하려는 베트남 국민들의 열망은 양국의 전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강대국이라는 우방국을 두고 있으면서 주변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베트남처럼 결단을 내릴 용기와 자신감이 있나요.
중국이 지배했던 아시아는 현재 중국이 중심이 되는 중국몽에 빠져있지는 않는가요.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지혜로운 외교활동과 자주권 행사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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