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
1967년 6월, 이스라엘 국경지역으로 밀집한 이집트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곧 공격받을 수 있다는 예상에 예방차원으로 이집트의 공군기지에 공습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이집트의 대부분의 항공기는 파괴되었고 공중전은 이집트에게 희망사항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서쪽으로 전진하며 가자지구를 포함한 이집트령 시나이 반도를 정복한 상황이 되었으니!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긴 이집트의 지도자 나세르는 요르단과 시리아에 합동 공격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제3차 중동전쟁으로 통용되는 전쟁이지만 아랍권에서 불리는 전쟁의 명칭은 다릅니다.
전쟁에서 압승을 거둔 이스라엘은 ‘6일 전쟁’이라고 부르며, 아랍권은 ‘6월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죠.
이 전쟁은 이미 제1차와 제2차 중동전쟁을 치른 후 이스라엘을 마치 해적이나 깡패와 같다는 부정적 여론이 흐른 가운데 치러진 전쟁이었죠.
이미 제2차 중동전쟁에서 패배한 이집트는 그래도 지지국이 많아진 국제여론의 힘을 얻어 이스라엘과 영국, 프랑스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터입니다.
이집트 지도자 나세르는 이스라엘과 지원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왜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과 영국, 프랑스는 국제사회에서 몰매와 같은 비판을 받게 된 것일까요?
이걸 알아보기 위해서는 제2차 중동전쟁 당시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이집트를 쿠데타로 점령한 나세르 대통령은 서방세계와 간사한 외교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상으로 대립이 강했던 당시의 시대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했던 터, 나세르는 이를 거부하고 양팔 외교를 진행합니다.
민주주의 사상 주축 미국과 서유럽에 많은 자금력을 끌어 댐 건설을 진행하려 했고, 사회주의 사상 주축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려 했기 때문이죠.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과 서유럽은 댐 건설 비용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게 이릅니다.
이에 자기 마음대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시켜버리는 대범함까지 보이게 되죠.
그런데 갑자기 이런 외교정책에 미국보다 더 크게 화가 난 국가가 나타납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이라크에서 값싸게 석유를 제공받았던 영국이 중심이 되어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이집트를 비난하였고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이스라엘도 가세하며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영국은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을 ‘제2의 히틀러’라고 단정하기에 이르며, 아랍지역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나세르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중동지역의 사회주의국 건설을 막기 위해 예방전쟁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하게 되죠.
이후 본격적인 전쟁은 아니지만 국지적인 작은 다툼들이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프랑스의 무기를 지원받은 이스라엘은 이집트 군대에게 효과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던 참이었죠.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대립하고 있던 중 이스라엘에게는 작은 고민이 하나 생겼죠.
자신들이 이집트와 국지전을 벌이고 있을 때마다 게릴라군이 나타나며 방해를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게릴라군은 이집트에게 무기 등을 지원받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이었죠.
점점 더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에게 3자 회담을 제의하기에 이릅니다.
이 세 국가의 외무장관들이 짠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전면전에 나서면 사실상 이집트가 우세할 것이라 생각하여 이스라엘의 피해가 생기게 되면 영국과 프랑스가 정의구현을 위해 참전한다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였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스라엘 혼자 이집트를 발라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도와줄 건수가 없게 생겨버린 거죠.
이스라엘도 자신들이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 줄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미국에서 난리가 납니다.
자신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이런 큰일을 벌인 영국과 프랑스에게 엄청난 비난과 책임론을 주장하기에 이르죠.
영국과 프랑스는 군말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소련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이집트 편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협박까지 하게 됩니다.
미국은 이런 사태를 책임지라며 영국과 프랑스에게 압박을 넣기 시작하죠.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에 혼나고 있는 사이 이스라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전 세계의 눈치만 보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전쟁은 끝이 났고 이스라엘은 제2차 중동전쟁에서 승전국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스라엘에게 승전국이 받아야 할 축하를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집트에게 더 강력한 지지국을 만들어주는 꼴이 된 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죠.
그리고 터진 제3차 중동전쟁, 우리가 알아보는 6일 전쟁이 발발하자 UN군의 참전은 확정적이었죠.
영국과 프랑스만 믿었다간 또다시 핵전쟁 위협에 시달릴 것이고 국제 정서에도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란 걸 UN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UN군이 참전하기 전 모든 상황을 끝내야 했습니다.
UN군이 참전한다면 그동안 자신들이 쑥대밭으로 만들고 점령한 영토들에 대한 주장을 묵살당할 것이고 더 힘든 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죠.
1967년 6월 5일부터 6월 10일까지 진행된 제3차 중동전쟁은 UN군이 참전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승전국으로 상황을 끝내야 했고 자신들의 이득을 더 많이 챙겨야 했기에 날벼락같은 전술과 승리로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이 전쟁은 군사강국이었던 이집트와 요르단의 패망을 알리는 시작이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에 찍힌 대가로 자체 핵무장을 하게 만드는 엉뚱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처럼 작은 국가일지라도 국민이 똘똘 뭉치면 어떠한 적군이 와도 승리할 수 있다는 애국심의 상징이었으며, 전쟁 전략으로 이스라엘이 비중을 두었던 도청과 정보망의 확보는 현대전을 하는 국가들의 절대적 필수요건이라는 것이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비난을 받아도 그들의 국민성과 애국심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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