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안에 놓인 여섯 채의 집

박민환 건축가의 ‘아동복을 위한 집’, 추상성과 틈의 건축

by 토요일의서울

공간 안에 놓인 여섯 채의 집


사진 _ 박민환건축사무소 제공


정제된 거리 풍경 속, 단숨에 시선을 붙잡는 공간이 있다. 고작 40㎡ 남짓한 이 작은 실내 공간에, 박민환 건축가는 무언가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그는 이곳에 여섯 채의 ‘집’을 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실외의 주택이 아닌, 실내 공간 안에서 구성된 여섯 개의 추상적인 건축적 장치들이다. 이 집들은 벽과 창, 틈과 빛이라는 기본적인 건축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존재 방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집의 개념과는 다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한 전시 디자인을 넘어, 건축 개념의 최소 단위인 ‘집’이라는 원형(Archetype)을 실내 공간 안에 다시 소환하고, 그것을 느슨한 경계 속에서 재조합한 것에 있다.



20190415_194026-1-1067x800-1.jpg 아동복을 위한 집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실내에 세운 여섯 채의 집

박민환 건축가는 이 공간을 하나의 전시장이 아니라, 여섯 개의 집으로 나뉘어진 작은 마을로 상상했다. 집들은 각각 자율적인 형체를 가지되, 서로의 경계를 뚜렷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 집들은 경계와 경계 사이에 느슨한 틈을 남긴 채 배열된다. 이 틈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시선이 흐르고, 사람이 스며들고, 빛이 통과하는 건축적 여백의 장소다. 각 집은 그러한 틈의 리듬 속에서 마주하고, 어긋나고, 겹치며, 내부 공간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완성한다.



minhwan-park_21-1124x800-1.jpg 아동복을 위한 집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추상적인 집, 그리고 장면의 시적 구성

이 여섯 채의 집은 실제 주거공간처럼 기능하지는 않지만, ‘집’이라는 심상(심리적 공간)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박스 형태의 집들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다양한 크기의 창이 부여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아동복이 전시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집들이 지극히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크기나 비례, 재료나 디테일 모두 미니멀한 형태로 정제되어 있으며, 이 추상성은 오히려 공간을 더 강력하게 감각화시킨다. 옷은 단지 물건으로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으로 배치되며, 공간은 자연스럽게 감성의 무대로 확장된다.



아동복을 위한 6채의 집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틈, 흐름, 그리고 공간의 관계성

박민환 건축가가 의도한 또 하나의 핵심은 틈을 통한 소통이다. 여섯 채의 집은 하나의 밀폐된 덩어리로 존재하지 않고, 틈이라는 건축적 장치를 통해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물, 내부와 외부를 연결한다.

이 틈은 우연히 생긴 간격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여백이며, 빛이 드나들고, 시선이 비껴나며, 방문자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건축적 장면의 설계된 틈새다. 그 결과, 이 작은 공간은 하나의 정적인 전시장이 아닌, 끊임없이 시점이 바뀌고 감각이 전환되는 복합적 체험의 공간이 된다.




내부의 도시, 실내의 풍경

전체 구성은 마치 실내에 지어진 작은 도시를 연상시킨다. 여섯 채의 집은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의 틈은 골목이고, 창은 조망의 장치이며, 집 안의 아동복은 이 도시의 주민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속을 걷는 방문자는 단순히 상품을 ‘보는’ 관람자가 아니라, 집과 집 사이를 거닐며 시선을 교차시키고, 틈 속으로 들어가 빛과 마주하는 건축적 산책자가 된다. 실내 공간은 더 이상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정의되지 않으며, 하나의 경험적 풍경으로 확장된다.



minhwan-park_6-600x800-1.jpg 아동복을 위한 집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개념과 기능, 그 사이의 균형

추상성과 개념적 실험이 강조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매우 명확하게 기능한다. 아동복은 빛 속에서 강조되고, 집의 구조는 전시와 동선의 질서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기능을 위하여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성과 감각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박민환 건축가의 디테일에 대한 높은 집중력 덕분이다.



아동복을 위한 집_박민환건축사사무소.jpg 아동복을 위한 집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도시에 놓인 조용한 선언

이 프로젝트는 단지 한 쇼룸의 설계를 넘어, 소규모 상업 공간이 어떻게 건축적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화려한 상업적 맥락 속에서, 이 작은 공간은 오히려 더 조용하고, 더 강렬한 존재감으로 작용한다.

밤이 되면, 여섯 채의 집 창 사이로 은은한 조명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거리의 풍경을 바꾼다. 쇼룸이 아닌 건축이 된 상업 공간, 혹은 상업 공간의 외피를 두른 작은 건축의 선언이다.



minhwan-park_9-1067x800-1.jpg 아동복을 위한 집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Project Info

프로젝트명: 아동복을 위한 집

위치: 서울시 강남구

설계: 박민환건축사무소 (www.minhwanpark.com)

건축가: 박민환

설계연도: 2017년

연면적: 약 40㎡



tioom-et-mere-by-minhwan-park-03-1400x700-1.jpg 아동복을 위한 집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실내 공간 안에 세워진 여섯 채의 추상적인 집들.’
그 집들은 경계를 느슨하게 허물며 틈을 만들고, 그 틈은 다시 공간을 풍부하게 만든다.
건축이 공간의 총량이 아니라, 관계의 질감이라는 것을 이 작은 프로젝트는 조용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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