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문학 사이의 경계, 건축이 응답하다

박민환 건축가의 국립문학박물관 설계 공모안 제안

by 토요일의서울

숲과 문학 사이의 경계, 건축이 응답하다

― 박민환 건축가의 국립문학박물관 설계 공모안 제안



박민환건축사사무소-국립문학박물관03.jp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서울 북부, 북악산 자락에 들어설 예정인 국립문학박물관의 공모 계획을 두고 건축가 박민환은 하나의 직관적인 문장을 꺼내 들었다. “이곳은 문학이 숲을 닮아야 할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설계 제안은 단지 전시 기능에 충실한 박물관을 넘어서, 자연의 풍경성과 한국 문학의 서정성이 건축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명확한 방향에서 출발한다.



자연을 짓는 건축

부지는 북악산국립공원의 기슭, 울창한 수림과 사계절이 변주되는 낙엽수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박민환 건축가는 이 장소의 물성을 단지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설계의 '주체'로 받아들였다.
그의 박물관은 자연의 한 조각처럼 조용히 놓이며, 하나의 명확한 컨셉을 따라 설계되었다.
그것은 바로 “Museum in the Woods”, 숲속의 박물관이다.


박민환건축사사무소-국립문학박물관02.jp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건축은 공간의 형태로 이 개념을 따라간다. 박물관은 붉은 소나무(Pinus densiflora) 숲에 둘러싸여 배치되며, 자연 식생이 건축 경계에 개입하도록 의도되었다. 붉은 소나무는 한국 문화와 문학 속에서 끊임없이 인용되어온 상징적 존재로, 결기와 절제,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다. 문학의 정신과 공간적 물성이 나무 한 그루로 수렴되는 지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장소와 기억, 상징 사이의 오랜 건축적 사유를 호출한다.



열린 문학의 공간, 닫히지 않는 커뮤니티

박물관의 진입 방식 역시 이 설계의 철학을 설명한다.
차량 접근은 모두 하부층으로 제한되고, 관람객은 조경된 숲길을 걸어 박물관에 도달한다. 나무 사이를 걷는 경험은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 아닌, '숲을 거닐다가 문학을 만나는' 것으로 치환된다.

이 여정은 곧 열린 공공의 장으로 이어진다. 건축가는 1층을 전면적으로 유리화하며, 북카페, 서점, 도서 열람 공간, 복합홀로 구성된 커뮤니티 커먼스(Community Common Space)를 제안했다. 이곳은 단지 기능적 홀의 나열이 아니라, 지역과 문학, 일상과 행사가 뒤섞이는 동적 플랫폼으로 설계되었다. 고정된 용도보다 유동적인 행위들이, 예컨대 낭독회, 시 영화 상영, 소규모 콘서트, 결혼식, 북페어 등 다양한 시민 문화를 담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자연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는 북악산과 주변 숲의 풍경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바깥 테라스와 이어지는 시각적, 물리적 연속성은 실내의 정적 경험을 외부의 동적 시간과 연결한다.


박민환건축사사무소-국립문학박물관01.jp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문학적 경험을 위한 물리적 층위

박물관의 깊이는 지하로 이어진다. 지하 1층에는 교육세미나실, 체험교육실, 수장고형 전문 문학 도서관이 배치되며, 학술과 교육이 함께 작동한다.
이 공간은 단순히 자료를 보관하고 열람하는 기능을 넘어서, 원고를 실제로 보고,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세계의 문학관들과 연결되는 네트워크 허브로 기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교육 프로그램은 원격 접속을 통한 공동 심포지엄과 강의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는 박물관이 단지 ‘보는 공간’에서 ‘연결되고 쓰이는 공간’으로 나아가는 전략으로 보인다.



박민환건축사사무소05 - 국립문학박물관.pn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박민환건축사사무소-국립문박물관05.jp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박민환건축사사무소-국립문학박물관06.jp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박민환건축사사무소-국립문학박물관08.jp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풍경과 건축의 마지막 경계

결국 이 박물관은 그 주변 경계마저 흐린다. 기자촌 근린공원과의 연결은 기능적 통로를 넘어서, 마치 그 숲의 연장이자 또 다른 언어처럼 기능한다. 외부 경로는 공연과 낭독이 가능한 넓은 공터를 품기도 하고, 반대로 고요한 사유와 독서를 위한 작은 정원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박민환의 국립문학박물관은 ‘건축이 조형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공간이 삶을 어떻게 다르게 통역하는가’에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그의 건축은 조형 이전에 관계이고, 공간이기 이전에 풍경과 시선, 언어와 감각의 경계지점에 놓인 통로다.

문학은 종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박물관은 그것이 건축 속에서 어떻게 숨 쉬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시적 선언이다.


박민환건축사사무소-국립문학박물관04.jpg 국립문학박물관공모안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제공




사진 및 도면 제공 : 박민환건축사사무소 (minhwan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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