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며칠이고, 한 달이고 책에 파묻혀 지낼 순 없을까.
독서를 한참에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 즈음 이런 생각을 내기도 한다. 내겐 유독한 장점 하나가 있고 그건 마침에 마음먹은 일을 곧장 실천하고 밀어붙이는 점이다. 다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에 몰두하겠다는 게 단순 유희라면 아마 시도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타자가 아닌 나 스스로를 발견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일었다. 책을 읽겠다는 것은 하나의 수단일 뿐, 나를 바라보는 일 외 다른 곳에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데 목적이 있다.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다. 고양이 두 마리가 파다 다닥 뛰어다녀도, 비비적 끼고 들어와 그르렁대도 명상은 계속된다. 40분가량이 흐르면 책상에 앉아 모닝 페이지를 쓴다. 매일의 글씨는 적나라하게 나의 몸 상태를 드러낸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보일 요량이 아니랄지 앞뒤 없고, 구성없는 투덜거림으로 가득하다. 이따금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한참을 써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으레 책을 읽고 인사이트를 공유하며 아침을 보낸다. 1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일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오롯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유튜브로 강연을 보기도 한다.
성인이 된 후로는 정말이지 시지프가 떠오를 만치 오르락내리락 장사를 하거나 영업을 했다. 심지어 대충 하지 않고 잘 해낸 일이 많아 평이 후하다. 엄마가 된 후로는 시간을 체크하거나 날이 가는 달력을 세지 않은 적이 없다. 마감을 해야만 하는 영업직에 있어서 한 달의 시간은 언제나 날개 달린 듯 지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좇기는 일에 익숙해 부대끼는 줄도 모르고 시간별로 가득 채운 스케줄을 당연시했다. 어쩌면 이렇게나 시간 관리를 잘한다고 스스로 칭찬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시간 관리하는 법을 배우려거나, 그를 두고 잘 산다고 여기는 것을 안다. 우리에게 시간이란 흘려보내선 안 되는, 한 땀 한 땀 알차게 가득 메워야만 하는 바느질이 된 지 오래다. 실제로 시간을 관리하면 성취면에서 우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틈이 없을수록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시간을 관리하지 않는다 해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부분은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꾸준히 핸드폰을 만지고 머리를 굴리며 무언갈 열심히 찾는다. 자의식을 강하게 만들어 줄 누군가와의 잡담이나, 자기를 잃은 불안을 잊게 해 줄 감각적인 재미 따위를.
이렇게나 삶이 무료했던 날이 있었나? 나는 마치 사업을 쫄딱 말아먹은 사람처럼, 혹은 별안간 알 수 없는 질병을 얻은 사람처럼 한가로이 불안을 직면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배경으로 녹아들었다. 삶에 덤이 있다면 꼭 지금과 같으리라. 나는 덤으로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언젠가 마주할 질문을 지금 이 자리에 꽂꽂한 몸으로 매일 마주하고 있으니 더없이 감사할 일이다. 내가 질문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느 즈음에는 필연적이므로. 나는 밤중에 키가 자라는 아이처럼 나의 영혼이 터무니없이 성장함을 느낀다. 그간 용케 질문하지 않고 이만큼을 살았을까.
당연했으므로. 장사도, 결혼도 출산도 모든 일이 너무나 자연스레 지나왔다. 영업직에 들어가 최고의 영업실적을 거두는 일에나, 덜하지 않도록 소장직을 임하는 일에 나는 거기 있으나, 분명 그곳에 없었다. 마치 자동 장치처럼 추호의 의심 없이 운전대에 올라 레이싱을 하듯 살았다. 어디로 끌고 가는 건지 방향도 정하지 않았고, 왜 가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문득 길 한복판에 서서 나는 질문하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사고가 났거나 기름이 떨어진 게 아닌데도 그저 멈춰 섰다. 바쁘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 우뚝 서니 욕을 먹기도 하고, 창피도 당한다. 지금 뭐 하는 거냐며 침을 뱉고 다시 미친 듯 달려가는 사람들 틈에 바로 서 이질감과 함께 수치심을 느낀다.
왜 계속 달려야 하는 건지 아무도 묻지 않는 거지? 많은 돈과 성취를 가진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는 왜 질문하지 않지? 우리는 왜 치열한 제로섬 게임을 계속하는 걸까?
다만 이 생에서 더 많이 갖기 위해 하루를 다 써버려야 하는 걸까?
꿈에 나는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왜 달리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사람들과 함께 달렸다. 문득 사람들의 땀방울이 눈물처럼 아리게 공중에 흩어진다. 이내 손에 쥘 수 있는 유리 구슬이 되어 주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을 구가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모습들은 마치 슬로 모션처럼 상세하고 느릿했다. 때로는 밀치거나 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 고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 앞을 보고 섰지만 앞서가는 이들의 무수한 머리통은 마치 거대한 용의 꼬리처럼 이어졌다.
영화나 소설을 잘 보지 않는다. 상상력이 남들 미만일 것으로 점칠 수 있지만 눈앞에 빌딩이 한줌의 먼지로 내리앉거나, 외계 생명체와 목숨을 걸고 무술을 펼치는 꿈을 이따금에 꾸곤 한다. 당장에라도 현실이 될 것처럼 꿈의 기억이 온몸 구석구석 감각으로 남아있을 만큼 아찔할 지경이다. 앞서 이야기한 건 10살 남짓일 때 꾸었던 꿈이다. 온 몸에 남은 꿈은 대체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떠들어대곤 했기 때문에 쉬이 잊히질 않는다. 나는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살고 가능한 한 친절하게 군다면 그로 삶의 목적은 소정 부분 이루지 않나 생각했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 안에 모든 질문은 빠져 있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만 가면 나는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연코 나의 삶이라는 걸 살았다고 호소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이탈해 제멋대로 살기 위해 질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삶을 진실되게, 나로서 솟아나는 데로 살고파 잠시 멈춰 섰을 뿐이다. 자동 조종장치를 끄고 나의 의지로 살아가기 위해 차체를 의식하는 중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