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명상

by 하민혜

바람이 내 몸안을 돌게 해야겠다. <perfect love>로 시작하는 테이프를 카세트에 꽂는다. 집이 있는 샛길을 벗어난다. 시동을 걸 때부터 나는 노래가 불어주는 바람에 녹기 시작한다. 이 테이프엔 살갗을 스치는 바람과 몸을 두들기는 바람과 등을 떠밀어 공중에 내 몸을 던지는 바람과 햇볕 속에 숨어 길게 몸을 누인 채 지그시 응시만 하는 나른한 바람과 <Ruby Tuesday>의 반짝이는 바람이 모두 들어있다.


<김혜순>





무엇에 빠진 느낌은 중독성이 강하다. 쉬운 예로 흔한 술이나 담배 따위가 있고, 이성과의 만남에부터 운동, 공부, 일까지도 확장할 수 있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할 때의 느낌을 말한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장관을 바라볼 때, 마주한 거대한 장막 아래 무엇이 나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게 멎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게 사라지는 0.1초의 순간, 존재에 희열이 차오르고 황홀경을 느끼리라. 거추장스러운 몸이, 쉴 새 없이 끓어오르는 생각이 사라지는 기쁨은 다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잠이 많은 내가 몇년째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는 이유이다.)




스마트폰의 문제는 쉴 새 없이 울리는 게 아니다. 진짜는 빠르게 텅 빈 느낌에 다가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는 점이다. 손만 뻗어 가볍게 터치하면 은근히 나를 녹일 수 있다. 무언가에 한창 빠져들 때의 느낌 역시 다르지 않음이다. 한 번 녹아들면 시간이 지나는조차 알 수 없고 선명한 세상은 흩어진다. 지금 이곳에서 세상이(분별이) 사라지는 건 다를 바 없으나 깊이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나마 높은 체험으로는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서기 어렵다. 그래 사랑으로 하나 된 순간의 강렬하고 깊은 체험은 문신처럼 새겨지기 마련이다. 별 수 없이 다른 대상에서 그를 구하려는 것이 흔하게 저지르는 일 중 하나이고, 우연의 산물로 일어난 나의 탄생처럼 스스로 그를 조종할 수 없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특정 대상 때문이라 서가 아니다. 그날의 바람, 습도, 입맛, 몸의 상태처럼 온갖 구성들이 최적으로 맞아 들어가며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중독에서 헤어 나올 방법을 모르고 우연을 기다리기란 따분해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저 '내게 일어난' 느낌이라면 나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당최 쥘 수 없는 그에 대하여 최후라면 마땅히 나를 공부하는 일환으로 명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의도는 어디까지나 나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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