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방인

by 하민혜



스물셋의 나는 책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가끔 서점에 들르곤 했다. 지루한 어떤 하루엔 신촌역 맥도널드 옆 서점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만났다. 소설은 아름다운 피렌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책을 덮은 후에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그 곳의 풍경이 잔상으로 남았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체로 무모했던 그때의 나는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생도 아니었고 회사원도 아닌 것이, 굳이 분류하자면 장사꾼에 넣을 수 있으려나. 돈이 제법 쌓이면 길을 떠나곤 했는데 생각해 보면 여행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남들 다하는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정체성을 갖지 못했던 20대이니만큼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열심을 다했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 '정체성'이란 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때아닌 기회를 만난 일도 있었지만 제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나를 모르는 채 주어지는 옷을 입기가 거북했다.


직항 비행이 빠르고 편할 테지만 내겐 무모한 젊음이 있을 터였다. 나는 홍콩을 경유해서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택했다. 4시간의 비행 끝에 홍콩에 도착했다. 그때 내 손에 들린 책은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였다. 앳된 얼굴로 대합실에 앉아 어리둥절해 보이지 않으려 부지런히 책을 펼쳤다. 지금 어딜 가는 건지, 이탈리아엔 왜 가는지를 혹여라도 누군가 묻는다면 도통 무어라 답할 길이 없었다. 무언의 막을 치기에 책을 펼치는 행위만큼 좋은 방법을 알지 못했다.


홍콩에서 다시 로마로 비행기를 탈 때엔 앞으로 13시간의 비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니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기 하나가 칭얼대고 잠들고 칭얼대기를 반복했다. 쩔쩔매는 엄마의 짜증 섞인 푸념 때문인지, 부쩍 비행기에 오른 나를 이해할 수 없어선지 머리가 내내 지끈거렸다. 야트막하게 잠에 들어도 10시간을 더 넘게 날아가야 했고, 누르고 앉은 엉덩이가 아려 괜히 구석으로 가서 내내 서있기도 했다.


젊음 바쳐 돈을 벌어다가 고생스럽게 비행기를 타는 데 수백만 원을 지불하는 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몰랐다. 17시간의 비행동안 세 번의 기내식이 있었고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할 즘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어딜 가서 무엇을 얻으려는가, 어두운 장막에 가린 마음처럼 도착한 공항엔 우중충한 연결통로가 이어졌다. 10년도 더 된 기억이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에만 해도 로마 공항은 뭐랄까. 조금도 정돈되어 있지 않은 어수선한 마을의 시장같은 느낌이었다. 공항을 걸어 나오며 나는 마치 과거로 회귀하는 듯 했고, 이 기분을 여행 내내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의 중앙역인 떼르미니 역으로 가기 위해 표를 사야 했는데 어느 곳에도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표를 구입하는 자판기가 여러 대 놓여 있었지만 온통 이탈리아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영어로 일절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니. 불친절한 느낌 역시나 여행 내내 이어졌다. 프랑스인들도 그랬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다. 그들은 대체로 여행객을 위해 굳이 자국어를 사용하며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척을 하곤 했다. 원하는 게 있을 때를 빼고는 일부러 이탈리아어를 뱉어냈다.


한참 자판기를 바라보며 뒤켠에 앉아 있었다. 오랜 비행에 고단했는지 방법을 찾기보단 오도카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대부분 한국에 두고 온 나의 모습처럼 급히 서두르고 있었다. 연인인지 부부인지 모르는 둘은 잔뜩 성이 나서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외계어로 들리는 이탈리아어로 다투었고, 나는 그 곁에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0분즘 흘렀을까. 불쑥 "지명아"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리자 어딜 보아도 형제로 보이는 두명의 한국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도움으로 자판기에서 표를 살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떼르미니 역에 도착해선 90년대 아니, 80년대 한국으로 여행온 듯한 광경을 목도했다. 단체 여행을 온 중국인 무리가 한 어귀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배곯아 들어간 맥도널드에는 얼굴 주변에 허옇게 연기가 차오르도록 담배를 태우는 이들이 보였다. 앉는 자리가 없어 모두 서서 햄버거와 연기를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한 이탈리아 여성은 선글라스를 낀 채 담배를 태운다. 별나라에 온 것인가, 찝찌름한 햄버거 맛까지도 떠나온 한국을 그리워하도록 힘을 보탰다.


이번이 두 번째 여행이었다. 언제나 앞으로의 여행 계획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나름의 한 달 살기가 세 번이나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한창 장사를 하다가 곧잘 떠나곤 했다. 먼 땅에 나 홀로 서있을 때면 버둥대는 나의 젊음이, 대한민국의 치열함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긴 여행으로 예산이 털리면 동네 마트에 들러 뭉텅이로 들어있는 베이글을 사서 끼니를 때웠다. 배 속은 비었을지언정 이방인으로서 낯선 땅을 누비는 자유로움은 영혼을 가득 채우곤 했다. 손에 쥘만한 무엇도 얻은 게 없었고 그건 한국에서처럼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여행지에선 그저 길을 잃는 게 정상이었다. 나는 타지를 걸을 때에야 비로소 별나지 않은 사람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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