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그땐 그랬지

by 하민혜

지난 6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을 앉혀와 보험 상담과 구직 상담을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연속적으로 불어닥치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내 눈앞에서 침착하게'암'이나 '뇌출혈'따위를 말하고, 자신의 몸 상태와 세월, 그리고 죽음을 말했다. 어쩌면 정말은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 처음 보는 이 앞에 자신의 죽음을 말할 리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 때문일지 제법 깊은 상담은 삶의 모든 불안을 그러모아 탁자 위에 올려두게 했다. 병원에서 답을 찾지 못한 통증에 대해 꺼내놓기도 했고, 상속, 세금 문제 등을 헤매다 보면 지지부진한 가족관계까지 풀어놓게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속속들이 알게 되는 한 사람의 삶은 때로 한없이 가슴을 앓게 했다.


한 번은 아버지와 닮은 삶을 버티고 살아낸 분을 만났다. 화려하게 사업을 펼치다 해일에 휩쓸리듯 모든 것을 잃은 분이었다. 가족, 돈, 명예 그 어느 것도 곁에 남아있지 않았다. 바람같이 불어간 세월에 흐르는 눈물은 말랐대도 밤이면 찾아드는 한기가 그를 덮치는 것 같았다. 매일 밤 잠에 들지 못할 만큼 죄책감에 시달리며 귓전에 울리는 원망의 소리를 쫓아내기 위해 티브이 볼륨을 한껏 높인다고 했다. 켜켜이 쌓은 과거의 영광과 자멸에 덮쳐드는 악몽으로 수면제가 아니고는 도저히 잠에 들 수 없는 듯 했다. 연락처마저 잃은 지 오랜 딸과 내가 꼭 닮은 나이라고 한다. 아프게도 자꾸만 내게 자신의 삶을 사죄했다. 어떤 날은 눈물을 훔치는 듯한 모습에 화들짝 놀라, 화장실에 다녀오겠다 말하며 자리를 비켰다. 그가 내게 내미는 고통은 차마 보지 못할 상처마냥 지독했다. 적절한 설계를 해드렸지만 그의 불안을 빌어 재차 보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타사로 옮겨간 보험은 결국 유지되지 못해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영업회사는 그의 불안을 이용하는 게 당연했고 그는 곧잘 흔들리고 있었다. 이따금은 들려달라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또 다른 분은 이가 숭숭 빠진 채 신명 나게 산행을 다니는 분이셨다. 그는 일찍 부인을 여의고 그녀의 죽음을 담보로 받은 보험금을 한 푼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식은 어린 날부터 성인까지 홀로 키워냈고 한 아이는 줄곧 정신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늘 밝게 미소 지었던 그분은 자신의 죽음 뒤를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본업이 있었고, 삶은 언제나 지금뿐이라며 환하게 웃음진곤 하셨다. 혹여나 아이들에게 짐이 되는 상황을 걱정했고 사망 보험금이 아닌, 질병이나 사고에 대해서만 대비하기를 원하셨다. 상담의 목적은 그들의 원을 풀고 설계하는 것이지 원치 않는 지점을 강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분의 생각대로 사망 보험금은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재혼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된 일이었다. 20년 가까이를 홀로 지낸 분이셨으니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해가 지나고 뵈었을 때 어쩐지 얼굴에 짙은 구름이 깔린 듯 보였다. 어떤 이유엔지 몰라도 그의 딸과 새어머니가 사이가 좋지 못해 자주 싸운다고 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이 신경 쓰였다. 결국 내 원성에 못 이겨 검진을 가셨고 몇 달 후 찾아오셨을 때엔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말했다. 머리에 종양이 두 개 발견됐다.


사무실까지 걸음 하신 그와 따뜻한 커피를 두고 자리했다. 보름정도 후면 설 명절을 앞두고 있었다. 의사는 가족들과 상의 후에 날을 잡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명절을 쇠고 수술을 한다 하셨는데 어쩐지 나는 바로 입원하지 그러시냐고 성을 냈다. 볼 적마다, 통화할 때마다 검진을 권했고 이번은 늦어지는 수술을 염려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태평하다고 했다. 나만 이토록 닦달을 낸다니 유난스러운 느낌이 들어 이번만큼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렇게 그는 흐릿한 미소로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 후로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서류 안내를 물으려나 했지만 순간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은 그가 아니었다. 젊은 여성이 내게 담담히 그의 죽음을 말했다. 매번 이야길 들었던 야무진 딸이 틀림없었다. 나는 한걸음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마지막에 보았던 흐릿한 미소 그대로를 찍은 듯한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달려든 것은 그의 유족들이었다. 사망 보험금이 얼마가 들었는지를 물었다. 어쩐지 머리 한 대를 맞은 것처럼 어지러웠고, 흐트러진 마음으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데도 지금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나는 고인이 사망 보험금을 원치 않았음을 말했다.


일순간 그들의 면면이 차가워졌다. 증권을 밀며 사망 보험금 외에 받을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뇌출혈이었다. 보험에는 진단금이 들어 있었지만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부검을 해야만 했다. 망설이는 기색 없이 그들은 부검을 하기로 한다. 나는 그 앞에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사고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누구나 병에 들고 죽기 마련이다. 그래 우리 삶에 한편으로 유효한 '보험'이 되리라 믿으려 노력했다. 때로 밥벌이에 시달리는 이가 넉넉히 진단금이나 수술비를 받을 때 이를 증명했다고 안심했던 것도 맞다. 적은 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충분한 대비가 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했다. 다만 버거운 어깨에 짐을 보태듯 보험료를 얹는 것이 맞는지를 우려했다. 더없이 줄여도 모자랄 사람들이 한없이 불안에 시달리며 짐을 늘리기를 자처했다. 무엇보다 위험을 조장해 겁을 주고 많은 보험을 가입하게끔 유도하는 회사의 전략이 가증스러웠다. 계속해 보험을 갈아엎게 만드는 영업 방식에 신물이 났다. 종교에 빠진 사람들처럼 보험 회사의 전략을 신봉하고 그에 끌려가는 이들과, 고인의 사망 보험금을 정성 다해 받드는 이들에게 어지러움을 느꼈다. 한 발짝 떨어져 나와 바라보니 명명백백하게도 삶에 보험은 유효했고, 인간의 불안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영업 방식 역시나 일절 사그라들 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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