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억울하고 온순한 강아지처럼 눈이 처졌다. 코는 길쭉하고 큼지막해 이따금 누군가가 닮은 외국인을 소개하거나 비스름한 남자 연예인을 내 앞에 모셔 오기도 했다. 우습게도 가늘고 얇은 턱이 미묘하고 진지하게 여성의 얼굴이라 강요하는 듯하다. 입술은 데어먹기라도 한 것처럼 제법 부풀어 발랑거린다. 이 얼굴을 두고 수많은 논평이 이어진 것은 한 집에 자매가 함께 자라서도 그랬고(닮은 듯 닮지 않은 언니와 비교당하는 일이 많았다.) 여성을 필두로 술집을 운영했기 때문도 그랬다. 제 발로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키가 크고 성숙한 몸때문일지 중학생 신분으로 인터넷 모델을 하며 학교를 종종 빠지기도 했다. 당시 친구들에게서 "저 얼굴로?"라는 류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고, 원치 않는 오디션 현장에선 얼굴을 난도질하듯 낱낱이 해체당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성형을 시키는 건 어떠신가요?"라고 조선 시대에서 튀어나올 법한 엄마를 앉혀놓고 이야길 하지 않나. 이런 때만큼은 엄마의 귀가 어둔 것이 다행스런 순간이다. 코가 크니, 눈이 작으니 하며 이 얼굴이 도통 내 것인지 모르게 풀어헤쳐 선반 위에 하나 하나 올려놓는 기분이었다. 나를 여성으로서 인지하고 살아간 일이 도무지 없지만 운명에 이끌리듯 나는 스물셋에 신촌에서 바(bar)를 운영했다. 그건 그저 가고 보니 도착해 있더라, 하듯 일어난 일이었다. 한창 젊고 열의에 넘쳤지만 여성일지 남성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짓을 많이 하던 때다. 그래 나는 주로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가게를 열었고, 서울 곳곳에 바(bar)가 늘어날 때 역시나 손님들에게 인사하거나, 술을 따른 일이 없다.
그때 나는 주로 인터넷 카페에서 고객들과 마주했는데, 그들에게 나는 우연찮게 볼까 말까 한 신비한 어린 여자 사장쯤 되었던 것 같다. 하루는 강서에 있는 사업장에서 나를 마주한 고객이 나의 외형에 대해 신랄하게 비평을 올렸다. 소문처럼 예쁜지는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여자애다, 연예인만큼은 아니지만 몸매는 봐줄 만하더라. 지금은 그런 글에 대해 달리 반응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보았다. 사람들이 남의 얼굴에 그리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게시판의 글은 날로 인기를 더해가며 인기탭에 올라 있었고, 댓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외모를 지적하거나 칭찬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의 말은 연예인들이 겪는다는 소위 악성댓글과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는 상처를 받고 있었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귀엽다, 못생겼다, 별 뜻 없이 말하는 것뿐인데 왜 이리도 아픈 것일까. 수치스러운 것은 고사하고 이 정도밖에 생기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 나를 발견했다. 열 다섯 나이에 모델일을 한다고 돌아다닐 적에 인형처럼 여문 아이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노력이 아니라 애초에 타고나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건 그다지 아픈 일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노력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라면 빠르게 포기할 줄 알았다. 사람들은 때로 그를 예뻐서 좋아했고, 예뻐서 미워했다. 못나서 좋아했다가 못생겨서 미워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그 기준에 나를 맞추는 일은 여간 고단할 일이다. 숨길 수 없이 드러난 얼굴과 몸매는 원치 않는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다행일지 일과 여행에 빠져있던 터라 그 어떤 일도 나를 강남으로 데려다 놓진 못했다.
대체로 동물은 수컷이 화려하고 인간은 여성이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알려진다. 짝짓기를 위한 일종의 신호탄을 울리는 거라 표현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많은 여성 앞에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며 끝없이, 혹은 무리해서 성형외과를 전전하는 게 어딘가 마뜩지 않다. 나를 위한 게 맞는 걸까?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는 매끈해져야 하는 것인가? 그건 마치 딸에게 너는 쌍꺼풀이 없어 사랑할 수 없으니 수술하고 오면 그 때부터 사랑하리라고 하는 것처럼 좀체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타인에게 부여받은 외모에 대한 평가를 뒤엎고 싶은 마음을 느낄 때가 있지만 그런 때마다 내가 선택한 건 포기였다. 이건 할 수 없는 일. 다시 태어난다면 모를까 외모로 사랑받거나 어엿하게 그로 우위에 서겠다는 마음 자체를 비운다. 그럼에도 나름에 신경을 쓰고 거울 앞에 앉아 가다듬기를 멈추지 못한다. 말을 가려서 내뱉는 이유와 같이 이 또한 예의려니 싶지만 이따금 피곤을 느낄 때가 있다. 동물로 치면 외모를 치장하지 않는 암컷으로 나거나, 사람으로 치면 조금이나마 덜 신경 쓰는 남성으로 나고 싶은 지경이다. 외양을 평가하는 눈과 스스로 가지게 되는 자기 비하, 가식적인 위로가 고단하다. 연예인은 오죽할까. 내 지경으로는 도저히 그를 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날엔가 딸이 아이돌이 되고 싶다 말했을 때 나도 모르게 불쑥, 눈앞이 하얘지며 우려하는 마음이 일었다. 물론 테를 내지 않았고 그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만 답했다. 무엇보다 현대판 귀족처럼 화려한 셀럽의 삶을 이상으로 꿈꾸는 것은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한데 나는 자꾸만 숨고 싶은 마음이다. 부러 오디션에 집어넣는 관계자들에게서 도망치듯 빠져나왔을 때처럼 그 길에 서면 나는 비뚤고 어긋날 것만 같다. 드러내고 글을 쓰면서도 이 마음이 도통 바뀌질 않으니 유명인이 되긴 글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