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즐긴다는 것은 지불한 값어치만큼 얻어 내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을 얻었을 때 얻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누구든지 돈을 지불한 값어치만큼은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무언가를 구입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건 아주 멋진 철학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5년만 지나면 내가 일찍이 알고 있던 모든 훌륭한 철학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 역시 그저 어리석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도 진실은 아닐지 모른다. 아마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가를 알아낸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연히 알게 되리라."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227p
세상이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하는 일이 있다. 상실을 겪을 때,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나 사업이 망했을 때가 그렇다. 상실이나, 큰 병을 진단받는 일 그리고 사업을 말아먹는 일 모두가 종말을 암시한다. 끝을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현재가 생생하게 드러난대도, 그것은 끝을 '인정한' 상태여야만 한다. 나의 경우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보지 않고, 바들바들 떨며 온몸에 힘이 들어갔을 뿐이었다. 정말은 끝을 인정하지 않아 눈앞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20대 가운데 기회가 빈번한 일은 위험하다. 세상에 서툴어 자칫 건강, 사람, 얼마 되지 않는 자산 그 모두를 잃기 마련이다. 나는 타고난 성실함과 밝음으로 일찍이 사회에 나서 선방했다. 거만한 데다 욕심까지 부렸다면 얼마나 크게 미끄러졌을까,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서늘해진다. 그때 나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신촌 바닥에서 술장사를 했다. 놀기도 할 줄 몰랐던(여전히 모르는) 스물셋, 넷의 나는 멋도 없고 장사밖에 모르는 애였다. 소녀 가장처럼 성실하고 어린 장사꾼. 조심성이라곤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데다 딱히 잃을만한 주제도 못되었으니 위험을 무릅쓰거나, 경험을 하는 데 돈을 지불했다. 또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돈을 뜯기거나 애인을 뒷바라지하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가치의 교환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도울 수 있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 돈을 주기 전에나, 후에 내가 원하는 대가를 받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그건 그저 줄 수 있어 주었던 것이지 빼앗긴 것은 아닌 일이다.
구속하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내게 그러는 것도 별로지만 내가 그러는 건 더더욱 마음에 안 든다. 세상 무엇도 묶으려거나 내 것이라 매달리지 않았으니 세상 역시 내게 그러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여유롭게 산다는 이야길 곧잘 듣곤 했다. 칠전팔기니 거창하게 않더라도 어지간한 실패나 무엇을 잃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다. 애초에 나는 가진 게 없는 걸, 잠시 잠깐 내게 오는 것뿐이라 여겼다. 자신 있던 건 언제든 돈을 벌 수 있다는 지극한 사실 하나였다. 나는 지금에도 그런 생각을 곧잘 하곤 하는데. 정 없어도 시장 바닥에서 무어라도 팔 수 있으리라는 바로 그런 자신감이다. 무슨 일을 해도 밥을 먹고사는건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물론 이건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이런 시절에야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선뜻 용기 나지 않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많을 뿐이지.
웬만한 일에도 끔뻑 않는 내가 사형 선고라도 받은 양 숨이 막히고, 등에 식은땀이 났던 때가 있다. 동업하는 사업장 세 곳을 신경 쓰느라 나의 사업장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매출이 하락하는 일도,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도 손을 벗어났다. 나는 신촌, 영등포, 강서, 인천까지 네 군데 지역을 오가며 업장을 관리하느라 정신을 쏙 빼고 있었다. 수입이 컸던 영등포에서 신촌과 인천에서 구멍 나는 수입을 메웠고, 강서는 이득도 실도 아닌 것이 그냥 그렇게 평균을 유지했다. 나로서는 모든 면접과 신입 관리, 매일 오픈과 클로징을 신경 쓰는 데만도 충분했다. 능력밖의 일이라기 보단 그게 바로 나란 사람이었다. 나는 10억을 준대도 죽을 듯이 매달리지 못한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건 결코 돈도, 명성도 아니다. 일찍이 그것을 알았지만 이내 잊고 살았다.
하루는 강서에서 일이 터졌다. 그 가게는 날마다 사고가 많았다. 미성년자가 나와 매니저를 속이고 가게에서 일을 하다 경찰에게 걸렸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엔 미성년자를 고용했다간 영업 정지에 벌금까지 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 그것까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동업자의 친동생이 큰돈을 들고 나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동업으로 운영했던 가게 3곳 중 2곳이 동생 명의로 사업자를 냈다. 모든 매출이 동생에게 입금되었는데 우리가 그 돈을 절반으로 나눌 때 즘 되면 언제나 억 단위가 넘어갔다. 2년이 되도록 별 문제없었으니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사람이고 그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벌금을 낼 돈이야 어떻든 마무리 됐지만, 주류 회사들에 갚아야 할 돈부터 영업 정지를 먹은 상태로도 고스란히 나가고 있는 직원들 월급 때문에 피가 말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1년 치 수입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이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다. 당장 내일 눈을 뜨면 수천만 원을 내어놓고, 또 몇 백씩을 내어놓아야 하는 날들이 앞닥친 것이다.
앓는 소리를 할 줄 모른다. 동업자와 막역한 사이도 아니었다. 우리는 3년을 함께했지만 둘이 식사한 일은 한 번밖에 없었다. 물론 직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함께였던 적은 있다. 그분은 그분 나름 회사에 지사장이었고 나는 나대로 바빴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그런 독특한 점이 맞아떨어진 덕에 생판 모르는 남과 3년을 동업할 수 있었던지 모른다. 통장이 마르는 데다 독촉 전화를 받는 덕에 나는 밥알을 제대로 넘길 수가 없었다. 밤이 오면 잠에 들기는커녕 등이 서늘해지도록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차를 팔고 자전거를 샀다. 그 돈으로 한 고비를 넘겼고, 작은 집으로 옮기며 또 한 고비를. 시간은 걸렸대도 결국엔 가게를 하나씩, 하나씩 정리했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스토리가 아니라서 씁쓸할지 모르겠다.
그 일로 욕심이 상황을 망친다는 것을 배웠고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다. 상황이 좋을 때엔 대부분은 마냥 좋은 사람이다. 하물며 나도 그렇다. 막장 드라마를 찍을 때야말로 본색이 드러나는 법이다. 그 시절에 나를 본 사람들은 사업 수완이 어떻니 운운하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내가 자수성가해서 부자가 되지 않는다면 손에 장을 짓겠다는 사장님도 있었다. 부자라니,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벌고 있으니 그건 너무나도 자명했다. 결혼 이후 짧은 시간에 초고속 승진을 하고, 영업 실적 역시 고공행진 할 적에도 나는 알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말한다. 누가 보아도 고작 칠할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을 뿐 그 이상은 닿질 않으니까. 적어도 돈이나 명성은 칠할 이상으로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자기 계발 서적을 종종 읽어왔다. 근래는 좀체 손이 가질 않지만 이전에는 그래왔다. 더 높이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험을 갖기 위해서였다. 돈을 버는 일만큼은 언제나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취를 갖도록 했다. 그것은 돈을 위해가 아니었고 삶을 위해서였다. 이미 알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맞수를 놓지 못해 희뿌연 안개가 서려 있었다. 뭘까 싶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를 알지만 알지 못했다. 좀체 꺼낼 수 없었다. 그래 나를 찾고 '발견'하는 것이 이런 의미구나 싶다. 그때 선택은 어떤 이유였는지,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적엔 분명 아니었지만 어느 날엔가,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부자가 될까? 실은 언제나 나는 이미 그 삶을 살아왔다. 욕심에 응해 사업장을 4곳으로 늘렸던 그날에, 38명의 직원을 부렸던 그때에 비록 차를 팔고, 집을 옮겼고 통장을 털었대도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를 되찾았다. 돈은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건 위로도 그러나 아래로도 내려놓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는 떠날 곳이 있으면 떠났고, 시간이 없는 적은 있어도 돈이 없어 원하는 걸 하지 못한 적은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굶을 줄도 알고 있는 것을 죄다 넘길 줄도 안다. 시골 구석에 일 푼 없이 가져다 놓아도 나는 분명 여유롭게 책을 읽고 산책을 다니리란 걸 알았다. 오랜 옛적 시대에 나서는 달랐을까. 글쎄 가진 게 많은 요 시절에도 어쩌면 지금만큼이나 사람들이 갖지 못해 초조해하는 때가 있었을까 싶다. 나는 애초에 갖고 싶은 게 없고 가고 싶은데도 없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