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은 손에 슬몃 땀이 베인다. 오월의 중간인데 이토록 더운 게 맞나. 고개는 앞으로 고정한 채 바쁘게 에어컨에 손이 닿는다. 금세 차 안이 냉기로 들어찼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조명이 꺼진 듯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나기였다. 후드득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구석구석 묻힌 기억들을 건드렸다. 먼저 떠오른 것은 내 앞을 걸어가는 아빠와 딸의 뒷모습이다. 아빠의 한쪽 어깨가 사랑으로 물든 양 진하게 젖어 있다. 우산은 딸에게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빗소리에 가린 대화는 제때 들리질 않지만 애틋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제 나의 아빠가 생각나야겠는데, 다음 떠오른 것은 비를 좋아했던 옛 연인이다. 그는 온 세상의 물을 사랑했던 듯싶다. 강이나 바다를 좋아했고,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는데 역시 그가 가장 좋아한 것은 '술'이었다. 연료를 채우듯 그를 가득 차오르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놈의 술이었다.
나의 20대를 점철한 그는 비 내리는 날 소주 마시는 걸 좋아했다. 나로서는 그의 가족, 친구들, 하다못해 동네 어르신까지도 한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게 신기했다. 첫째로 우리 집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풍경 같은 건 털나고도 본 일이 없다. 둘째로 그의 뱃속에 있는 커다란 술통이 어째선지 내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들이부으면 붓는 대로 얼굴이 벌게지고 도로 쏟아져 나왔다. 술꾼인 그와 그의 주변인들에게 나는 마치 치기 어린 꼬맹이로 보이는 듯했다. 어쩌다 두세 잔을 받아 마시면 기어코 취기가 올랐고, 그들처럼 신나려다가는 여지없이 온 세상이 흔들렸다. 커피 마시는 거냐 놀려대던 사람들에게 나는 대뜸 이 몸을 가지라고 주고만 싶었다. 소주 몇 잔으로도 모든 게 흔들리다 못해 몸속에 있는 모든 게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그들이 알았으면 했다. 현실에선 입은 다물고, 손이 바빴다. 주로 안주를 다루거나, 주문하는 일이 내 담당이었다.
그 친구는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열여덟 살에는 술 없이도 재밌는 친구였는데, 점점 술이 아니면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걸로 치면 나를 따라잡을 이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재밌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선지 어릴 적엔 유머러스한 사람이 좋았다. 그의 술통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게 분명한 친구, 연인을 곁에 두길 좋아했다. 엄마는 이따금 흑에 백이 물든다며 염려했지만 글쎄. 애초에 흑백이 있나 싶은 게 본심이었다. 좀 더 살았다는 어른에게 반항하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이건 의심할 여지없는 확신 같은 거였는데, 과연 어떤 사람도 나를 물들이진 못했다.
살아온 세월이 고작 이만큼인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강렬한 빨간색, 어딘지 유치한 자주색부터 사랑스러운 핑크색, 어둑한 회색, 싱그런 초록의 사람들을. 그들이 옆에 누군가와 인연 하며 조금씩 색이 번지는 것도 지켜본 일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심정 변화를 관찰하는 데 능숙하다. 타고난 재주인지 모르지만 마음을 관찰하는 걸 즐기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마음이 변하면 대체로 그들의 색도 옅어지거나 진해지는 걸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만큼 보다 더 자주,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찰한다. 어느 날엔 어릴 적 내가 물들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다. 대체로 마음의 색은 늘 변한다. 그건 다른 사람이고 나고 할 것 없이 같았다. 다만 사람의 다채로운 색을 마주할 때 내 마음은 무채색에 가까운, 투명이 되곤 했다. 그들의 색은 여지없이 나를 관통했다. 나는 어떤 색에든 뚜렷하게 좋거나 싫음 없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색을 비치는 것에 재미를 추구했던 까닭이다.
누가 보아도 진한 가을의 적갈색을 내는 사람이 나와 마주 앉은 날이 있었다. 그날 처음, 그 역시도 일순간 투명이 된다는 걸 알았다. 누구나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문득 수용하는 마음일 때가 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무엇도 바라지 않으면서 미리 염려하지 않는 편안한 상태가 그러하다.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에 사로잡히는 때엔 여지없이 진한 적갈색이 드러났다. 고유의 색이 있는 줄 알지만 그 모든 게 자신이 그린 그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이의 배경에는 그저 투명한 창이 있는가, 생각한다. 이윽고 세상 탓, 남 탓, 환경 탓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닫는다. 어느 곳에서도, 누구와 함께여도 나는 투명한 창으로 존재할 수 있다. 나를 내세우거나 감추려들 때, 무언갈 얻으려거나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을 낼 때가 아니고서야 우리는 결코 무엇에도 물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