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준

나, 그리고 세상

by 하민혜

아그네스 데밀은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때에 나팔소리가 들리진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결정이라 하니 인생의 2막을 여는 결혼, 출산이 떠올랐다. 나는 어째 머릿속이 온통 사랑인가 의뭉스럽다. 성취를 올리고 망하는 때 조차 사랑이 결부되어 있는데 사실 이성 간의 애욕스런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 친구, 연인 그리고 자녀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많은 사랑이 삶을 이끄는 동력이 되고, 무너뜨리는 절망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어떻다고 분석할 게 아니라 우선 나부터 돌아보면 될 일이다. 나는 어떤 때에 성취욕과 승부욕이 타올랐는지, 작고 큰 결정 앞에 세이렌의 노랫소리라도 스쳤는지 말이다. 아무리 털고 털어도 오직 내겐 사랑뿐이라. 휘몰아치는 욕망은 강렬하게 타오르다 사그라들었던 기억이다. 지속하는 힘이 강했던 적은 욕망과는 거리가 먼, 굳이 말해 인류애라 하자니 어렵다. 그저 곁에 누군가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오지랖,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이 넉넉히 누렸으면 하는 막연한 소망이 나를 은은하게 태우며 살게 했다.


사랑이라니. 그러고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생을 이어가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를테면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 적당한 대접 등을 자신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식이다. 다만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발악은, 사랑을 건네는 유일한 방법으로 오인하고 말아 피로감이 든다. 호사를 실컷 누리도록 하고, 가족이나 주변을 무한정 돕는 일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착각 말이다. 그렇담 가난하고 성공 못한 이는 자신은 물론 주변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셈이 된다. 글로 적고 보니 위선으로 어그러지는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사랑이 나를 끌고 가든, 미움이 나를 밀어 붙이든 삶은 매일의 소소하거나 부담스런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나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무심코 이어간 선택이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경고처럼 보인다.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게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가, 혹은 행복과 불행을 말하려는가. 예를 들어 나의 결혼을 두고 현재를 기점으로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가르는 거다. 전문가를 모시고 점수를 매기는 식이면 과연 나의 선택이 잘한 일인지 못한 지를 말할 수 있을까? 그게 정답인지는 누가 보장할 수 있을지, 당최 어느 시점을 두고 성패를 가늠하려는지가 궁금하다. 끝에 끝을 말한다면 도무지 늘어진 시체일 뿐이다.


인생에 좋은 결정이란, 대체로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벌어진 일이 과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고정된 진실을 바라는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해 내심 심판받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세상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고 싶어 한다. '좋은 결정'과 '나쁜 결정'의 기준과 판단을 세상에게 양도한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삶의 행복과 불행은 역시 조건적일 수 없으며, 그 누구도 판가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렇다고 믿을 때, 세상 역시 그렇다는 것을 믿는다. 이를 깨우치고 자신의 길을 걷는 이는, 나이가 몇이든 외모가 어떻든, 자산이 얼만지 관계없이 도리어 칭송받기까지 한다. 기준을 온전히 자신에게 두는 일은 용기있고 세심하다. 이토록 간절하고 동경심이 들만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유별난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