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의미

필사

by 하민혜

필사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블로그에만 올리고, 이 곳엔 올리지 않고 있는데

질문 중에, 집이 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결혼 전, 엄마와 함께였던 집은 안식처였어요. 청소하는 일도, 집을 돌보는 일도 제 의무는 아니었지요.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던지고 나면 늘어져 있기 좋았습니다. 때 되면 엄마가 밥을 주셨는데요. 마가린에 간장을 비벼 먹더라도, 그렇게 매 끼니를 챙김 받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부턴 집은 제게 일터였습니다. 회사를 다녀오면 옷을 갈아입을새 없이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해야 했어요. 물론, 가장 중요하고 우선했던 일은 식사 준비입니다. 당연하듯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시키든, 요리를 하든 그 모든 행동의 시작과 끝이 제 몫이니까요.


아이들이 10살쯤 된 지금엔 제법 베테랑이 된 것 같습니다. 나름의 순서를 지키며 시간을 분배할 수 있어요. 집안일에서 벗어난 건 아니고, 앞으로도 떼어낼 리 없겠지만 제법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책상 앞에 글을 쓰는 지금, 어질러진 집을 보며 감히 말하건대, 이제 집은 나 자신이나 다름없습니다. 틀림없이 혼연일체입니다. 엄마 밑에 살 때 그 집은 내 집이기보단 엄마집이었어요. 억울했거나 불편했단 게 아닙니다. 도리어 편안했어요. 이제 집은 제게, 저 자신입니다. 직접 가꾸고 보듬고, 하나하나 손이 가야 하지요. 그러니 어지러운 집을 보면 어지간히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처음은 그게, 남편과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의무를 안 해서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알아요. 의무감에서 똑 떨어져 나간 건 아니지만 분명히 집은 나 자신으로서, 내버려 두고 방치할 수 없는 대상이란 걸요. 내버려 두면 단순히 찜찜한 무엇이 아니라, 몸이 병들고 다치는 일만큼 방치할 수 없는 대상이 돼버렸어요. 집을 사랑합니다. 아이들이 쉴 수 있어서, 제가 잠들고 일어날 수 있어서, 남편과 아이들이 웃고 화내고 울고, 그렇게 서사가 쌓여가는 이 집을 사랑합니다. 11년 결혼동안 세 번 이사했습니다. 이사 갈 때면 매번 가슴 한편이 시큰합니다. 물성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게 아닌 걸 알지만, 젖을 물리던 제가,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가 집안 곳곳 묻어있기 때문이에요.


한 집에 콕 박혀 살다 죽겠단 건 아닙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사를 다닐 테고, 집을 물성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저 어느 집에 살건 가족과 함께 사는 그 집은 언제나 나 자신으로서 사랑하는 대상일 겁니다. 추호의 의심도 들지 않아요. 앞으로도 내내 나의 집을 사랑하리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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