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안하는걸까

by 하민혜


"거절을 잘 못해서 고민이야" 어느 날 친구가 고민을 털어놨다. 친하지도 않은 직장 동료가 터무니없이 자기가 할 업무를 넘긴다던지, 도를 넘는 집안일을 부탁하는 걸 거절하지 못했단다. 턱없이 요구하든 갖은 애교를 부리든 상대의 계략에 놀아나고 만다는 게 골자였다. 글쎄. 우리는 왜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사람들은 거절을 잘하는 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가르는 듯하다. 내게 자신의 문제를 넘기는 친구 역시 "민혜 너는 거절을 잘하잖아. 난 마음이 약해서"라고 말했다. 나는 각이 잡힌 정장을 입지만 허름한 티셔츠를 입을 때도 있다. 대개 사람들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옷차림으로 행색을 살피기 마련이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위험(?)한 사람일지, 도움이 될만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다만 자기도 모르게 판단 내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를 확증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편향이 발동하는 거다.


전화가 걸려온 친구는 회사 동료이다. 나는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공사 구분을 확실히 하고 효율성을 우선에 둔다. 적은 시간을 들여 집중하고 몰입해 성취를 이루는 데 목적이 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거나, 지나가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일은 업무를 할 때 걸친 옷과는 관련이 없다. 오랜 친구가 마음이 뒤숭숭해할 때, 먼 길을 불사하고 아침 일찍부터 그에게로 발걸음을 떼기도 한다. 기부처 일곱 군데 중 하나만 줄일까 생각하다가 외식 한 번 덜하면 되지, 하며 이내 마음을 접고 만다.


그쪽에서 생각하는 나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거절을 잘하는 걸로 보였다면, 너와 달리 나는 마음이 강해 보이는지를 물었다. 동료였던 그의 눈에는 내가, 자기 기준이 확실해 선뜻 부탁을 하기조차 어려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렇담 자기 기준 없이 무너진 듯 보이는 사람에게 우리는 종종 무례한 부탁을 서슴지 않는다는 걸까.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에게 도리어 내가 계속해 질문했다. 그녀는 나의 물음에 대답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갔다. 삶의 우선순위에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가 없다. 혼자라면 운동도 다니고, 여행을 다니든지 취미생활을 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퇴근 후면 늘어지기 마련이다. 그의 눈에는 내가 정장을 갖추고 소장이라는 명함을 쥔 모습과, 아이들 픽업을 위해 퇴근을 서두르는 그 자체로 자기 기준이 강해 보였는지 모른다. 실은 결혼 전에도 으레 이런 이야길 듣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내겐 늘 우선순위가 있었다. 덕분에 주관이 강하다거나 소신 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마치면 나 역시 늘어진 티셔츠에 꼼짝 않고 게으름을 떠는 줄은 알 리 없다. 알고 싶어도 안 한다. 가끔 사람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가 자신과 다르게 자기 관리가 철저할거라 보고, 휘둘리지 않는 사람일거라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질 않으리라는 확신 말이다. 그렇담 무의식 중에 거절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일부러 부탁조차 하지 않는 거다.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다.






스물 하나즘, 잠시 백화점 안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연히 얼굴을 이모저모 손대고 있는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한참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 친구가 성형예찬론을 펼쳤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정말 예쁜 얼굴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 딴에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어물쩍댔다. 동의를 구하는 그 친구에게 나는 성형할 돈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는 붉게 상기된 볼 만큼이나 올라붙은 목소리로 "민혜야, 나는 너처럼 자기 주관이 있는 여자가 너무 좋아"라고 뜬금없이 고백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마치 죄책감 같은, 이상하리만치 찝찝한 마음으로 그녀와 헤어졌다. 지금 와 돌아보면 성형을 예찬하고, 그 뜻을 펼치는 친구가 훨씬 주관이 강해 보였다는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한 거다.


나는 그 누구도 설득하지 않으려 한다. 한데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설득을 잘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자신이 주장하는지조차 모르는 어떤 지점을 갖고 있다. 뿌리 깊이 박혀, 옳고 그름을 논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꺼내지조차 않는다. 딴지를 걸지 않고 그걸 인정하고 마는 내게 선뜻, 그들은 설득력 있다고 칭찬한다. 깊은 관념에 반대하지 않으니 언뜻 상대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거다. 어디까지나 제대로 보거나 듣고 있지 않다. 오직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들을 뿐이다.


나를 거절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친구는, 스스로 자기 삶에 우선순위를 갖겠다고 했다. 그게 거절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냈다. 나는 여러 번 무리한 부탁을 했던 사람에 대한 시선도 거두길 권한다. 잘난 체하는 사람을 '잘난 체하는 사람'이라고 고정시키면 유독 내 앞에서 그런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마치 엄마가 넘어질 거라며 쳐다보고 있을 때 진짜 넘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를 착하다고 바라보는 사람 앞에선 나도 모르게 착하게 행동하게 된다. 상대의 갖은 행태와 계략에서 문제를 찾지 말고, 내게서 문제를 찾아야 해결할 수 있다. 애초에 부탁을 들어주는 내가 밉지 않으면, 그가 부탁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얼굴에 빛이 꺼진 채 고민이라고 늘어놓을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린 지금 이 사태가 누구 탓인지를 찾자는 게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다. 상대를 그만 쳐다보면 좋겠다. 자기 자신한테 묻고 스스로 답해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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