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삼촌

by 하민혜

사람들은 답도 없는 가치를 찾아 헤매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정작 중요한 질문을 잊고 산다.

그날은 여지없이 바쁜 날 중에 하루였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회사엘 가서 들뜬 서류를 정리한다. 프린터기는 쉴 새 없이 종이를 토해냈고 손에 얹힌 펜은 제 갈길을 향했다.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에 나를 섬뜩하게 하는 이름이 있다. 가족 그리고 선생님이 그랬다. 이건 암묵적으로 합의된 지점인데 바쁜 아침, 평일 이 시간대에는 긴급한 일이 아니고야 전화를 걸지 않는 거다. 고개를 돌려 핸드폰 화면에 엄마가 떠있는 걸 본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여보세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를 에워싸는 모든 소음이 연극처럼 멀어졌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엄마는 기필코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독한 아버지와 그만치 고생스럽게 옆을 지킨 어머니 아래 둘째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 놀러 가면 어딘가 모르게 눅진한 느낌이 들었다. 인자한 할머니를 좋아했지만, 미소 짓는 얼굴을 모로 돌릴 때 스치는 엄한 느낌과 슬픔이 나를 무겁게 했다. 그건 엄마에게 느껴지는 신념과도 닮았으니 내게 외갓집은 엄마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셨다. 십자가에 고개를 까딱 돌린 가녀린 예수가 벽에 걸려있었다. 어린 나는 앙상하게 뼈만 드러난 예수를 보며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실까 궁금했다. 그의 고난에 빌어 자신의 고생을 위안받는가, 생각도 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아픈 언니 아래 엄마가 났고, 밑으로 남동생이 둘 있다. 엄마에게 핏덩이처럼 어린 막내 동생은 나와 제법 가깝게 지냈다. 유쾌한 눈가 주름 아래 깊이 베인 슬픔이 느껴졌지만 그건 내게 낯선 느낌은 아니었다. 술에 취해 가끔 조카에게 전활 거는 철부지였을지 몰라도 나는 분명, 그리고 삼촌 역시 서로에게 애틋한 느낌을 가졌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막내 삼촌은 돈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 점에 대해 나는 조금도 지적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체로 외갓집 식구들에게 느껴지는 마음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던 아버지 아래 자란 입장에선, 그 두려움은 합당했을 터다. 안타까운 건 돈이 얼마든 실제 액수와 상관없이 그 두려움은 끝이 없었다는 거다. 실제 삼촌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30년째 입고 있는 바지와 같은 기간 동안 길들여온 자동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신용카드나 대출 따위는 그의 세계엔 존재하지 않았다. 추억을 쌓는 일도, 사랑을 나누는 일도 뒷전에 둔 억울한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막내 삼촌이 죽었어 얘.."엄마의 말소리가 울음 덕에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는데, '막내 삼촌'과 '죽었다'는 말만큼은 또렷하게 귀에 내리 꽂혔다. 순간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질문이 쏟아지니 그 무게로 입이 다물어졌다. 사무실에 모든 분주함은 내 모든 감각에서 먼지처럼 사라졌다. 수화기 너머 엄마의 울음소리가 얼굴에 가득 들어찼다. 무슨 정신인지 모르게 가방을 챙겼다. 뭐라 말을 붙이는 직원을 뒤로 하고 주머니에 돌을 한가득 넣은 듯 지하 주차장으로 걸음했다. 차에 앉아 잠시 넋을 놓고 앞을 바라봤다. 실은 앞을 보는 게 아니라 재차 삼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해사한 미소가 눈앞에 어른댔다. 돌아가셨다니, 왜, 이제 갓 쉰을 넘은 젊은 나이다. 술을 달고 살긴 했다만 그게 이유라니 합당치 않았다. 당장 전화를 걸면 특유의 유쾌함으로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불과 일주일도 전에 삼촌과 통화했다. 아무렇지 않게 큰삼촌 이야길 나누고 전활 끊었다. 언제고 다시 이야길 나눌 수 있단 듯이.


삼촌이 곁을 떠난 지 일 년 하고 반이 더 지났다. 글을 쓰는 지금에도 곧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가 남긴 유산을 상세히 알지 못하는 게 다행스럽다. 평생 돈을 그러넣고 차곡차곡 쌓인 통장을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침대에 누워 가만 잠든 듯한 삼촌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죽음 앞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말하길 좋아했던 삼촌의 마지막은 참으로 허망했다. 입관에 앞서 나는 그 입이 훈계를 던질 듯하리라 상상했다. 다만 경직된 그 몸에 더 이상 삼촌은 들어있지 않았다. 별수 없이 우리는 그가 벗어던진 허물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 몸을 떠난 삼촌이 그리워 눈물, 콧물이 흘러내렸다.


삼촌의 생은 치열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냐마는 악착같이 쌓아 올린 자산을 말하자면 혀를 내두를만하다. 누구나 열심히 산다지만 왜 열심히 살려는지를 묻고 싶다. 후회 없는 삶을 꿈꾼다 놓고 최악만을 피하려다 떠나는 데 의문을 갖는다. 대체 죽음보다 최악은 무엇인가. 나는 제2의 삼촌이, 그리고 내가 죽음 앞에 후회 없기보단 만족스럽기를 목표했으면 좋겠다. 돈이 많다는 건 애초에 비교 대상을 필요로 한다. 삼촌은 돈이 많았다. 남과 비교해 우위에 서기 위해 평생 고단하게 사셨다. 만족은 순전히 그 기준과 중심을 내게 두는 일이다. 계속해 비교하기를 부추기는 세상에 속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새벽 눈을 감는다. 눈을 감자 애달픈 삼촌이 숨과 함께 곁을 지났다. 앓은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내게 질문한다. 오늘은 어떻게 만족스러운 하루, 생을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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