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대하는 자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얼마간 자유로운 날들이 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용돈 벌기를 해온 탓에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동네를 돌았다. 당시만 해도 구인 광고를 직접 가게 앞에 써붙여놓곤 했다. 커피숍, 피자집, 옷가게에 들어가 구두로 면접을 봤다. 당장 나와 달라는 옷가게에서 일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커피숍과 피자집에 전화를 돌렸다. 다른 데서 일하게 됐습니다, 가 골자였다. 커피숍 사장님은 전활 걸은 일에 부쩍 감사해하며 요즘 아이들이 어떻고, 로 시작하는 푸념을 쏟아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만 이렇게까지 고마워할 일인지 의아했다.
그로 몇 년 후, 직접 가게를 열고 아르바이트생과 직원을 구했다. 내일부터 나올게요, 했던 사람이 전활 받지 않거나, 며칠 나오다 연락 두절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다른 지역에도 장사를 열었기 때문에 어느 곳은 매니저가 나 대신 영업장을 오픈해야 했다. 한 번은 새로 온 매니저가 달랑 메시지 하나를 보내놓고 출근하지 않았다. 개장 30분 전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오픈을 하고 있던 나는 서둘러 신촌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가게 앞 화분에 열쇠를 꽂아두었다. 나 역시 그들만치 젊었지만 어린 친구들의 무책임함에 혀를 내둘렀다. 커피숍 사장님이 왜 그리 감사를 비쳤는지, 푸념을 쏟았는지 꼿꼿이 이해가 된다.
무슨 이유엘까, 가만 보면 우린 스스로가 느낀 감정에 대해 인정하는 일을 어려워한다. 자신의 감정을 책임지지 않는 이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자기 자신에게 하듯, 불편한 상황을 못 본 척하는 데 도가 튼다. 모든 시작점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다. 분노, 무기력이나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몰고 마는 자신은 물론 사회에까지, 그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일을 하기로 해놓고 나오지 않은 일을 말하자면, 그 결정을 한 자신의 감정을 바로 보지 못하는 거다.
책임은 인정하는 태도다. 게으름을 떨건, 무기력이든, 불안이 밀려왔건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도저히 출근할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라는 게 본심이라면 따라온 불안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마주 보는 일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다. 가슴에 불이 번지는 걸 모른 척할 때야말로 활활 타오르는 법이다. 화난 걸 모른 척할 때 도리어 화에 휩싸인다는 말이다. 무기력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이유는, 스스로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는 불 보듯 뻔하다. 자신을 모른 체하는 사람이 가족 관계에나 사회에서 다를 수 없는 일이다.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데다 귀신 씌듯 감정에 빙의돼 자신이 누군지를 잊고 살아간다. 무능력함을 인정하지 않고 피하려다 무능력한 존재가 되고, 무기력을 억누르다 되려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주변에 대한 폐해보다야 스스로가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힘을 잃고 마는 지점이 안타까운 거다. 주체성을 잃은 사람은 세상을 원망할 테지만 곧장 그 원망은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데 익숙해지면 그런 자신을 점점 미워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를 미워하면 타인이, 세상이 보기 싫다. 세상이 싫어지면 세상에 속한 나도 밉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극단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랑에 빠진 순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린 사랑에 빠진 자신의 감정 상태를 좋아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할 때와는 태세가 다르다. 이번은 좀 더 느끼고, 붙들려 노력한다. 설레고 기쁜 마음을 바라본 뿐인데, 바람결이 보드랍고 평소같이 신경질 내는 상사마저 귀여워 보인다. 자신의 마음이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막역한 힘이 된다. 설사 지금 오르는 게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마찬가지다. 불안은 쓸모없다고 배웠다손 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그 감정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무자비한 감정은 없다. 모든 감정엔 이유가 있고 그건 나에게만큼은 의미가 없지 않다.
그림 그리는 아저씨 '밥 로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말했다. "어둠을 그리려면 빛을 그려야 합니다. 빛을 그리려면 어둠을 그려야 하고요. 빛 안에서 빛을 그리면 아무것도 없지요. 어둠 속에서 어둠을 그려도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꼭 인생 같지요. 슬플 때가 있어야 즐거울 때도 있다는 것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좋은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설렘이 계속이지 않듯 지금의 슬픔도 떠날 것이 분명하기에 손님과 다름없다. 비록 초대하지 않은 손님일지라도 손님을 귀하게 대접할 때, 나를 찾아온 목적을 바로 볼 수 있다. 예를 갖추는 건 나부터다. 주인은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내가 나 자신임을 알고 내 삶의 주인임을 안다면, 손님을 대하는 태도부터 점검할 일이다. 감정을 대할 줄 모를 때 우리는 감정에게 주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끌려가듯 사는 삶은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주인이기 위해 감정을 살피고 대접한다. 어떤 감정에든 잡으려거나 떨치려지 않고 마주 봄으로써 스스로가 주인임을 곤고히 하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