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묻은 허기

그렇게는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아닐까

by 하민혜

아이들이 이따금 먹방을 본다. 이 집 아이가 아니라도 먹방의 인기는 날로 치솟는 듯하다. 체격이 있는 사람부터 작고 날랜 이가 어마어마한 양을 흡입하듯 씹어 삼킨다. 이목을 끌기 위해 색이 강렬하거나 어디서 보지 못한 독특한 음식을 먹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왜 먹방을 보는 걸까, 하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실그러뜨렸다. 먼저 드는 생각은 스포츠 중계를 재밌게 보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 고만한 차이로 나 역시 즐기질 못하는가 싶었다. 눈앞에 우적우적 분필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은 체구가 나의 세배즘 되는 남자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발가락에 눈이 달렸다고 놀림을 받곤 했다. 그 말인즉슨 보는 눈이 심하게 낮다는 말이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무지렁이 같아 사람들 외형에 대해 후하게 점수를 내곤 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앙증맞은 입술이 미소 지으면 곧장 그녀가 예쁘다는 생각이 올랐다. 코가 작고 납작해도 길게 찢긴 눈이 반짝이는 걸 본 순간 그가 잘생겼다고 생각이 드는 거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호감과 직결되진 않는다. 나에게 사람들의 얼굴이란, 지나가는 싱그런 풀이나 나무를 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누가 어떻다, 이야기 듣고 말하길 좋아하는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 대해 외모를 먼저 말하기 쉽다. 그래 나는 그들을 예쁜 얼굴, 잘생긴 남자로 묘사하길 잘했다. 친구들은 민혜한텐 물어보지 마, 믿을 수 없어,라고 말했다. 나로서는 외모를 들고 객관적인 기준에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다.

내 눈엔 예쁜 사람, 정말 예쁜 사람, 너무 예쁜 사람으로 나뉘는 듯하다. 그까지야 눈을 씻어도 고쳐지지 않지만 몸매에 대한 기준은 매몰찬지 모르겠다. 유럽으로, 미국으로 곧잘 여행을 다녔다. 매번 흠칫하고 마는 건 최소 내 엉덩이의 다섯 배 즘 되는 뒤태나, 어깨, 그리고 산만한 배다. 묘사가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를 설명한 거다. 부푼 배가 아래로 흐드러져 걷는 일조차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도 여럿 마주쳤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이 감정의 정체가 뭘까 궁금했다. 애써 위선을 떨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마른침을 삼키고 본다.

거뭇한 수염에 허옇게 가루를 묻히고 분필같은 걸 입에 욱여넣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다 답이 떠올랐다. 음식을 먹는 건 생물의 기본 욕구다. 어쩌면 성욕도 마찬가질 텐데, 동물과 같은 본능을 양껏 채우는 모습에 신물이 오른다. 물론 먹는 일에나 성욕을 채우는 일을 가치 없이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허기, 인간이 느끼는 쾌락의 값이 짜증스럽달까. 하다 못해 사자도 배가 부르면 지나는 사슴을 쳐다도 보지 않는데, 인간만큼은 배가 부른 뒤에도 고작 혀 끝에 닿는 재미를 놓지 않는다. 곳간을 채우고 또 채워도 만족하지 못해 없는 사람의 것을 탐하기까지 한다.

본래 타고나는 얼굴에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이 느껴지지만, 인간의 허영심과 욕심을 빌어 보여주는 몸에 만큼은 혐오감이 오르고 만다. 단순히 덩치가 큰 동물이 눈에 보기 싫다는 미적 기준 때문은 아니다. 배가 등에 붙어 있는 사람과 팔뚝이 젓가락처럼 늘어진 채 못내 굶고 있는 아이들이 떠올라서다. 먹방과 포르노를 보는 일이 무어가 다를까. 욕구를 직접 다루는 일이나, 대리 만족하는 일에나 그저 모자란 뿐이다. 우린 그렇게 밑 빠진 독에 물을 들이 붓는다. 영혼의 구멍을 육체의 욕구로서 채우려야 채울 수가 없음이다. 직접 대고 쾌락을 좇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사람의 몸이라, 유독 쓰고 마른침을 삼키게 된다. 육중한 몸을 보면 나의 영혼이 느끼는 허기를 보는듯해 두려움이 엄습한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절제하고 살아가는 중에 가만 덮칠 듯한 구멍을 마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오민석 교수는 '생판 모르는 남들이 만나 가족을 꾸리고, 살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먹고, 섹스하고, 자식을 낳고, 늙어가고 병들며, 다가오는 죽음에 악착같이 저항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처연하고 장하며 아름다운가.'라고 말했다. 그의 칼럼을 읽으며 사람은 살기 위해 사는 거지,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욕구에 저항하거나 그 가치를 아래로 내릴 이유도 없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본능에 대한 치열함으로 주변을 잊고 눈을 가릴 수 있다. 배가 부르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거친 강을 건너 터를 잡았다면, 움켜쥐고 있는 구명보트를 물에 빠진 이들에게 던져야 할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주인이 된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