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칭을 받고 있다. 매일 쓰는 만큼이나,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고 평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다. 어디까지나 쓰는 건 나의 몫이므로 글이 좋아진다기보단, 글이 나아간다고 해야겠다. 지난번 코칭을 받는 중에 강연 제안을 받았다. 사람이 없는 공간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이나, 사람들 앞에 서서 강연하는 일이 그 본질로서는 차이가 없는지 모른다. 나 따위가 글을 쓴다고,에서 내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고? 까지 생각이 이어지는 건 별 수 없는 일이다. 감히 제안을 보류할 수 있었다. 글을 쓰기로 결정한 때만큼이나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라던가, '제가 뭐라고 강연을요.'라는 게 진솔한 본심이다.
생이 건네는 아픔이나 고통에서 비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지 않았다. 무어든 피하려들지 않고 내게 오는 인연, 사건을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하겠다고. 삶에게 언제나 yes! 를 외치겠다고 말이다. 열심히 준비해 보겠다 답하며 주제가 모호할 수 있어 이번은 내치셔도 좋다, 한마디를 보탰다. 열등감에 솟은 말일 터다. 무엇에도 도망가지 않으리라고 단디 마음을 먹음에도 여전히 빠져나갈 구멍 하나를 파고 있는 나를 본다. 이어 강연은 확정입니다 작가님, 이라고 덧붙이신다. 주제가 어떻든 최초에 승낙한 강연을 진행하란 말이다. 부쩍 발을 동동거리게 된다. 가느다란 다리로 높다란 절벽 앞에 선 기분이다.
장사를 하던 때에나 영업일에 선방하고 있을 적에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지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나에 대한 오해였는데, 낯선 사람과 대화를 즐긴다거나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는 거였다. 엄마는 소심한 8살의 나를 웅변 학원에 보냈다. 몇 달 후, 작은 웅변 대회장에서 조그맣던 하민혜는 꼼짝없이 얼어버렸다. 엄마와 선생님이, 심사위원들이 시작하라는 이야길 속닥였지만, 그들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느릿하고 어눌해 보였다. 정작 시간을 멈추고 느릿해진 건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단상 위에 서서 얼음처럼 굳어 있다 결국 퇴장 처리를 당했다. 그 일로 혼이 난 게 아니라 망정이지, 타고나길 앞에 서길 좋아하지 않아 발표라면 질색인 삶을 살았다. 혹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지 않냐, 생각한다면 나는 정말 튀는 걸 좋아하지 않다는 걸 증명할 사건을 끝없이 이어 붙일 참이다.
영업 일을 하며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일중에 나는 어서 가면을 썼다. 진짜 나를 뒤켠으로 누르고 없는 체하는 데 도가 텄다. 어리석게도 나의 존재값이 '돈'이라고 믿던 시절이다. 그러니 존재 이유를 스스로가 납득하기 위해서라도, 가면 쓰는 일에 능숙해야 했다. 처음은 얼굴이 굳고, 숨을 쉬는 법을 잊은 사람 같았다. 이해가지 않지만, 단상 위에 굳어 있던 나로서는 충분히 열린 일이다. 가끔 나도 모르게 가면이 슬쩍 벗겨지면 여전히 숨을 쉬지 못했다. 그즘 병원에 가면 공황 장애 진단을 내렸을지 모른다. 그마만큼 나는 발표가, 낯선 사람들 속에 서 있는 일에 어려움이 있었다.
나란 사람은 그렇게 생겼지만, 그런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남들 앞에 설 때 한없이 작아지는 마음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건 여지없이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보잘것없는 나를 들킬까 감싸느라 포장지에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다. 숨을 제때 쉬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가면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줄로 착각했지만 참다 참다 뱉어내지 못한 숨이 나를 가둔다. 내 몸보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산다. 한없이 사랑하는 딸 앞에 부끄러운 게 없다. 딸을 사랑하는 이유가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내어놓는 일이, 부족한 나를 인정하는 일이 어려운 건 거뭇하게 올라붙은 자의식만큼 내린 자존감 때문이리라. 오늘도, 내일도 내게 오는 사건, 사람들 앞에 가만 포장지를 벗기고 가면을 내리는 용기를 낼 수 있길. 그건 내가 세상에게 사랑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오롯이 사랑을 주리라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