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삼촌이 카드를 훔친 모양이다. 사기를 치고 다녔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액수를 가둔 일로 쫓기는 것 같았다. 마지막 만찬이라도 이는 양 고가의 레스토랑에 동업하는 아저씨를 불렀다. 함께 식사를 하고 나가며 삼촌은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내민다. 빤한 표정을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경찰이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함께 선 아저씨도 검은돈을 움직이는 사람으로, 지금에 벌어진 상황을 금세 눈치챈 듯했다. 그는 그 카드로 계산하면 나까지 뒷덜미가 잡히지 않느냐며 삼촌을 향해 눈을 뒤룩거렸다. 삼촌은 혼자 잡힐 수 없다는 말을 중얼대며 헛기침을 하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삼촌이 나가는 등에 대고 눈을 부라렸다. 살인 청부업자라도 달고 다니는지, 검은 양복을 입고 서늘한 눈빛을 띈 두 사람이 나타났다. 고개를 까딱하자 둘은 곧장 삼촌을 따라나섰다.
창문인지, 공중에선지 그 장면을 내리 보며 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삼촌의 잘못이 만천하에 들통나는 게 나은건지, 이대로 영영 사라지는 게 나은지 얼른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무거운 머리를 싸매고 소파에 앉았다. 덜컥 문이 열렸다. 엄마가 여행이라도 다녀오는지 캐리어를 끌고 집에 들어선다. 얼굴은 파랗게 질려선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엄마, 왜 그래요? 내가 말했다. 엄마는 밖에 누가,라고 했다. 밖에?
그 순간 누가 가슴 언저리에 싸하게 찬물을 끼얹는 것만 같았다. 나는 밖을 보기 위해 문을 열고 나섰다. 삼촌이 피범벅이 된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깨 한쪽과 가슴은 찢겼고 얼굴 한쪽은 빨려들 듯 크게 구멍이 나 있었다. 삼촌은 어딜 들어 봐도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입을 벌려 신음한다. 아아..
아아, 하며 꿈에서 깼다. 오늘 새벽에 벌어진 일이다. 꿈에 온통 에너지를 쏟았는지 몸이 고달프다. 머릿속엔 엄마의 표정과 말이 맴맴 돌았다. 밖에 누가, 라니. 꿈에 나온 삼촌은 현실에선 살며 빚이라곤 1원 한 푼도 지지 않는 사람으로, 작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사인은 알 수 없다. 직계 가족이 부검을 원치 않았으니 미궁에 빠진 셈이지만 심장 마비 거나 간의 문제려니 싶다. 삼촌은 엄마에게 한참 아래 동생이다. 꿈 해석을 하고 싶은 요량은 아닌데, 겁에 질린 엄마가 마음에 남는다. 꿈에 나는 아저씨였다가, 삼촌이었다가 엄마이기도 했다.
그 모든 장면으로 깨닫는 건 고통스럽고 아픈 일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다. 어마무시한 일이 벌어진 줄 알지만 문을 닫은 채 웅얼거리는 그 모습이 마치, 버젓이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나의 자세가 아닌가 싶기 때문에다. 꿈자리가 뒤숭숭 해설지 온종일 몸이 무겁다. 한 달에 한 번 티브이를 켤까 말 깐데, 웬일인지 리모컨을 찾았다. 마침맞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어긋난 모성애로 아이를 설득해 동반 자살한 모자 이야길 다루고 있었다. 아이가 접어 냉장고에 고이 넣어둔 종이학과 직접 쓴 유서를 보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죽음이 반드시 나쁘냐 하면 꼭 그렇다고 말할 지혜는 없지만 여기 있는 우리로선 아픈 건 분명하다. 어쩌면 죽음 그 자체보다 '타의'라는 지점이 더 아픈 것 같다. 피지 못한 꽃, 함부로 꺾인 모양에 가슴이 짓눌린다. 버젓이 살아내는 오늘, 곁에 이웃은 말도 안 되는 학대를 당하고, 바다 건너 전쟁이 벌어진다. 다 알면서 문을 닫고 두려움에 떨며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닐까. 문밖에 삼촌은 죽어가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술 취한 김에 못내 조카에게 전활 걸어 괜한 이야길 해대는 걸 조금 더 들어드릴걸. 엄마는 저녁에 걸려오는 삼촌 전화를 받지 말라셨다. 남편도 있는데 삼촌의 체면은 물론, 나의 체면을 걱정해서였다.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전쟁이 벌어지는 데도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내쳐 닫고 있는 게 슬프다. 문밖에 쓰러져 신음하던 나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당신이 아프다. 진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모르지만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나를 그저, 외면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