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길을 걷다 호수 가운데 하늘로 뿜어대는 분수를 보았다. 바람은 이리 가라 눕히는데, 그에 맞서 몸을 세우고 헤쳐 가는 이가 꼭 거꾸로 솟는 분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예 창작이다 뭐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앞으로 50년이고 매일을 쓰겠노라 다짐하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건에 굴복하고 쏠리는 날에도 나는 마음이 내는 길을 가기로 수없이 결심한다. 세상을 앞에 두고 끌려갈 적에 나는 소리가 작았다. 곧잘 세상에 묻혔다. 세상을 뒤로 두고 걸어가려니, 알맹이가 없는 나로서는 요란하고 시끄러울 수 밖에. 텅 빈 내가 부끄러워 도로 눙치고 싶다. 글을 읽기만 할 적엔 입만 벌리면 그만이었다. 글을 쓰겠다 하면서는 마음까정 분연히 벌어진다.
뭐 그리 심각하니, 소란스러우냐 타박할는지 모른다. 생은 시간이다. 더는 허투루 살지 않기로 마음먹은 터다. 타인의 목숨은 나의 것 만큼이나 위태롭고 소중하다. 글을 쓰는 몫이나, 글을 읽는 몫에 엄중한 책임을 느끼는 까닭이다. 별처럼 숱하게 많은 책들 가운데 나까지 책을 만들 요량은 무엇인가를 숙고한다. 고된 일상 중에 책을 읽는 것이 당최 타당해야 말이다. 베개로 삼거나 냄비 받침으로 쓰기엔 터무니없다. 멈추지 않고 글을 쓰는 이유와 글을 읽는 이유를 그려본다. 사람따라 달리 세세한 이유일지라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임을 어렴풋이 알 듯해서다.
작년에 나는 독립 출판과 공저 출간을 했다. 그 책을 얼마 전까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퇴고할 적엔 수없이 들여다본 원고였는데 막상 실물로는 거들떠도 보기 싫었다.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내가 과거의 나에게 쓴소리를 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상처받을 일투성인데 이렇게까지 모질어야 하나 싶었는지 모른다.
더욱이 책을 내는 이유를 스스로 답하지 못한 채, 손에 들린 책을 보는 게 가증스러웠다. 마치 좋은 줄 모르는 건강식품을 남에게 판 것 같은 기분과 같았다.
이따금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이 짜거나, 달거나, 갖은 이유로 맛이 없는 걸 넘어선 적이 있다. 나는 사장이 자신이 파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는 데에 감탄했다. 장사를 오래간 경험하고, 영업도 제법 했지만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는 걸 권한 적이 없다. 만일에 별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면 나는 팔지 않기를 선택했다. 이건 곧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가식을 떨기가 적절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다. 입에 발린 말이랄지, 속 없는 소릴 뱉을 수 있는 사람을 그런 저런 이유로 존경하는 까닭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직장에의 비애는 분명했다. 여성 특유의 앓은 소리를 내는 일에나, 칭찬을 섞어 비위를 맞추는 건 내겐 영 속이 볶아대는 일이다. 같은 소장임에도 혜택을 받는 쪽은 언제나 마음에 없는 소리를 잘하는 쪽이었다. 우는 아이 먼저 달래는 식이, 남녀 사이에나 직장에서나 여지없이 통하는 진리였다. 알면서도 하지 못했다. 자초했던 나로서는 적어도 불평 없이 의연하려 노력했다.
글에 미리 결론을 짓고 쓰지 않는다. 대체로 감정이 오르고 생각이 끓어오르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러니까 오늘은 아침 공원에서 솟은 분수를 두고 감정이 일었던 거다. 나는 내 책을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누구 할 것 없이 이득 추구가 만반 한 세상에 나까지 힘을 보태려지 않는다. 목적을 다하는 글을 쓰고 싶다. 답이 솟을 때까지 쓰고 쓰다 보면 텅 빈 수레가 채워지려나. 그제야 시끄러운 속이 묵직하니 고요해 질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