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아이 등굣길을 함께 걷고 잠시라도 혼자 공원에 들러 산책을 한다. 가운데 호수를 두고 제법 크게 원을 두른 공원길을 걷는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스쳐가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덩그러니 벤치에 앉아 계시기도 한다. 평일 아침 시간이다 보니 한창 젊은이들은 코도 보이질 않는다. 새롭게 눈에 띄는 잎이나 벌레를 들여다볼 적도 많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찬탄하기도 한다. 이런 여유가 가당키나 한지, 벅찬 가슴을 온전히 느끼고자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아침만 해도 날이 좋아 걷기에 그만이었다. 아이들과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며 인사하고 공원을 향했다. 노골적으로 풀잎을 들여다보고 싶은 몽상가로서는 사람이 적기를 바라는 때가 많다. 적당한 바람이 매일 입는 티셔츠처럼 거슬리지 않고 친숙한 날이다. 그거만 해도 충분한데, 오늘따라 사람이 별 눈에 띄지 않는다.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걷는 모양이 다를 것도 없으면서 괜히 신이 난다.
얼마쯤 걷다가 인형처럼 눈을 내리고 가만 앉아 계시는 할머니 곁을 지났다. 주름진 할머니 손에 들린 지팡이를 보다 문득 나는 눈을 감고 걷고 싶어 진다. 왼편으로 호수가 뻗쳐 있고, 걷는 쪽은 낡은 깔개처럼 나무판자로 덧대어진 길이었다. 시멘트 바닥이나 흙길이랑은 면면이 다르니 행여라도 옆길로 새면 얼른 눈치챌 수 있을 터다. 길 가운데 서서 어떤 경위도 없이 눈을 감았다. 족히 스무 걸음은 비뚤거려도 무사할 길이다. 한 발, 두 발, 걸음을 내딛는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내달리다 뛰쳐나올 것도 같고, 괜한 공포감마저 덮쳐 들었다. 한 걸음만 더, 속으로 되뇌는 새 한쪽 눈을 반쯤 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대로 포기할쏘냐, 나는 아예 눈 위에 손바닥을 얹고 걸음을 내디뎠다. 도처에 어둠이 깔린,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했다. 더는 못 가겠다. '정말 더는 못살겠어.' 꼭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죽고만 싶었던 때가 떠올랐다. 한 사람의 의식은 미로와 같다. 얼마나 깊은 심연인지를 가늠할 길이 없지만, 어두울수록 그 사실이 뼛속까지 사무친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어 앉는 때에도 매번 어둠 속에 길을 잃는다. 퍼뜩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은, 단지 명상에서만 해야 하는 건 아닌 뜻이다.
눈을 뜨면 될 걸, 가린 손을 내리면 될 것을. 더는 못 간다며 꼭 멈추고만 싶었던 건 정말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태도였다. 오르고 내리는 파도를 타고 있을 뿐인데, 애면글면 올라간 일이 내 덕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병에 걸린 일도, 죽을 뻔한 사고도, 뒤통수를 세게 맞는 일도 모두 탓이 있으리라 여겼다. 내가 그와 결혼한 일이나, 이혼을 결심한 일이,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것조차 단순히 깊은 심연 속에 피어난 우연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하마터면 죽는 순간까지도 나는 눈을 가리고 까닭을 찾으며 불안에 떨 뻔 했다. 문득 따뜻한 햇살이 포개진 손 사이로 빗살처럼 스며든 거다. 그렇게 한창 빛을 노려보다 심연의 공포에게 응분의 작별인사를 고했다.
삶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먼저 나를 볼 수 있어야 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본연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어둠 속에선 발에 밟히는 나뭇잎이 나를 두렵게 한다. 곁을 스치는 바람마저 위협적이다. 시시 때때 공격적인 사람이나, 불안에 사로잡혀 물고 뜯는 사람에게 그 자신이 가린 손을 내리도록 돕고 싶다. 눈을 번쩍 뜨게 해주고 싶다. 누군들 화려하게 옷을 두르고 태어날까, 내가 보는 세상은 머릿속 편린에 불과하다. 모두가 눈을 뜨고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각자가 자신의 원대로 살아간다면, 아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