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06.24
⠀
고전 살롱 여신님들과의 숙론에 앞서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읽었습니다. 단단하고 담담한 글투로 이루어진 헤밍웨이의 역작입니다.
책의 주인공인 노인 '산티아고'는 바다를 사랑하는 진정한 낚시꾼입니다. 바로 헤밍웨이 그 자신을 빗댄 거겠죠. 노인과 반해 몇몇 젊은 어부들은 낚싯줄 대신 부표를 사용하고, 상어 간을 팔아 모터보트를 사기도 하는데요. 이들에게 바다는 (남성형)'엘 마르'이며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로 비칩니다.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바다에도 영향을 미치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아름다운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삶은 때로 재앙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말은 삶이 인간에게 악의를 가진 게 아니라, 별 수 없는 일이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작은 벌레가 뜬금없는 장대비를 맞고 그 몸을 떨구듯 말이죠. 하늘로서는 의도한 게 아니었을테니까요.
바다를 단지 일터로 삼는 이는 바다를 사랑하는 건 아니라 말하는 것 같아요.
산티아고는 84일간 한 마리 고기도 낚지 못하는데요. 살아가며 갖은 성취(고기를 낚는 일)를 이루지 못할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연하게도 주변에선 그를 한심해하고, 가엾이 보지만 노인은 빈곤과 불운에 굴복하지 않고 차분하게 하루하루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
무엇을 낚든, 낚지 못하든 살아있는 한 인생은 계속 이어집니다. 결국 남는 건 태도가 아닐까요? 주글거리는 노인의 얼굴, 눈앞에 어른대는 검은 얼룩과 스러지는 육체는 인간의 나약함을 마주 보게 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해도, 사람은 늙고 흙으로 돌아가야 할 육체를 입었으니까요. 저는 이 몸이 여간 성가실 적이 많았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잠이 자고 싶거나, 아프기까지 하는 등으로 뭔갈 이루는 일을 방해하거나 저지하는 적도 있었으니까요. 노인을 보면서도 가만, 그 느낌이 떠올랐어요. 넘어지고 찢어지는 그의 몸이, 늙고 병약한 그가 안타까워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다.
파괴당할 순 있어도, 패배할 순 없어.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자신의 배보다 큰 고기와 2일을 넘도록 사투를 벌이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의 독백, 상어들과의 혈투는 마치 삶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특히나 노인이 망망대해에서 홀로 질긴 투쟁을 하는 동안의 독백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글이 마치 나의 고백인양 눈앞에 넘실이는 바다가 그려졌고 찢긴 얼굴이 아렸습니다.
'하기야 저 고기도 내 친구이긴 하지.'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저런 고기는 여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하지만 나는 저놈을 죽여야만 해. 하지만 별들은 죽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지 뭐야.' 날마다 사람이 달을 죽이려 한다고 상상해 봐,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아마 달은 달아나 버리고 말 거야. 하지만 인간이 날마다 해를 죽이려 해야 한다고 상상해 봐. 우리는 운 좋게 태어난 거야, 그는 생각했다.
.. <중략>..
저 놈을 잡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있겠는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저 고기를 먹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아냐, 그럴 자격이 없어. 저렇게도 당당한 거동, 저런 위엄을 보면 저놈을 먹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란 단 한 사람도 없어.
산티아고는 성취나 목표(고기)를 향해 가는 과정에 여지없이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큰 청새치를 낚고, 상어 떼에게 뜯기는 상황에도 낙담하는 법이 없습니다. 끝내 인간은 파멸당할지라도, 패배할 수 없는 건 어쩌면 삶에 무수한 목표(낚시)를 새로이 갖는 까닭일 겁니다. 그는 목숨과 맞바꿀 수도 있었던 커다란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했지만, 온갖 상어 떼들에게 모두 뺏기고 마는데요. 인간이 이루려는 모든 성취, 목표 그 투쟁의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했어요.
그에게는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노인은 모든 것을 초월한 채 가능한 한 배를 요령 있게 다루어 무사히 항구에 도착할 수 있도록 몰았다... <중략> 배에는 이상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키 손잡이 말고는 전혀 피해가 없어. 손잡이 같은 거야 쉽게 갈아 끼울 수 있지.
침대란 참 좋은 물건이지. 녹초가 되었을 때 그렇게도 편안하게 해 주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가 얼마나 편안한 물건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지. 한데 너를 이토록 녹초가 되게 만든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어. 다만 너는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돛대를 걸고 다음 낚시를 기약합니다. 비록 다섯 번이나 쓰러짐에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 집을 향해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여정에서의 치열한 '실존'만이 의미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길 위쪽의 오두막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꿈을 꾸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 글입니다. 도입부에서도 산티아고는 사자꿈을 꾸는데요. 사냥을 좋아했던 헤밍웨이에게 사자가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 봅니다. 맹수이면서 동물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는 고대부터 불가사의한 '힘'을 상징했어요. 산티아고는 비록 인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실패한 인생을 살는지 몰라도, 낚시를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인입니다. 모든 걸 빼앗길지언정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강한 사람이죠. 서평을 쓰며 다시금, 그의 태도에 존경심이 솟습니다. 136페이지, 어렵지 않은 스토리니 꼭 한 번 읽어보시고 지지 않는 인간의 삶, 그 태도를 성찰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