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연히 사주팔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대 일찍부터 장사에 뛰어들면서 주변에 사장님들과 돼지 머리를 얹고, 팔자를 들여다본 거다.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하면 그만 일텐데, 의심이 많은 나로서는 어떤 근거로 작당하는지가 궁금했다. 급기야 티브이에 수차례 출현했던 사주 카페 언니와 친분이 두터워졌다. 언니가 사주는 과학이야,라고 말하며 논리를 펼치면 나는 끝에 끝까지 허점을 찾아내고자 물고 늘어졌다.
사람이 왜 태어났는지, 누군가는 왜 일찍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는지 무례하게도 꼭 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한데 명리학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람은 자연이고, 우주라는 증거만을 속속들이 발견했다. 누군가는 텅 빈 흙땅에서 내리쬐는 태양에 쩍쩍 갈라지는 모양이고, 다른 누군가는 한겨울 찬 서리에 얼어붙은 나무로 태어난다. 원죄니, 화택이니가 아니라 인간 역시 자연으로서 그러하다는 거다.
웬 해괴망측한 소리냐며 벌떡 일어날 분들을 위해, 사주팔자를 믿고 안 믿고를 말하려는 게 아님을 밝히고 싶다. 나는 아마 타고난 성향, 기질, 환경 따위를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나'라는 인간의 기반을 사주에서 볼 수 있을 뿐이라고 결론지었던 것 같다. 실은 돌려 말한 거지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시골서 자수성가한 하 씨 아버지 밑에 둘째 딸인 내가, 꼭 거기에 그렇게 나온다는 뜻이다. 하면서도 허허로운 건, 왜 누군가는 성공하는 기질을 갖고 나는 거며, 어떤 이는 전쟁통에 태어나는가,였다. 노력 여하에 따라 무엇이든 거머쥘 수 있는 게 사람이라 해도 애초부터 열악한 바탕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햇볕이 적절하고 땅이 넉넉하다 한들, 사는 내 비바람과 갖은 풍파에 맞서지 않을 요량은 없다.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자이언트 세쿼이아(Giant Sequoia) 군락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높이가 120미터에 달해 나무를 끌어안으면 작은 스머프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수천 년 된 거목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용은 근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곰이고 사슴이고 사람들은 말할 것 없이 그 곁을 둘러싸고 있었다.
건장한 거목은 그에 걸맞은 널따랗고 비옥한 흙땅이 필수 요소였을 터다. 이토록 곧고 굵도록 자라나는 건 결코 혼자만의 능력으로 해낼 수는 없음이다. 비옥한 땅은 물론, 곁에 나무도 적절한 거리를 두었어야 하고, 시기 좋게 내리는 햇볕과 비바람 덕이 있음을 말할 필요조차 없다.
물이 얕은 테나야 호수를 들렀을 때, 곧장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둥둥 떠내려가는 부목이었다. 뿌리내리지 못하고 제때 자라지 못한, 속이 텅 빈 나무였다. 사주에선 쓸모없는 인간상을 부목에 비유하기도 한다. 태어나길 몸을 디딜 땅이 없고, 곁에 웃자란 나무들 틈에서 햇볕을 오롯이 받을 수가 없거나, 필요 이상으로 물이 넘쳐 속이 썩어버리는 경우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본분인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거다. 키만 부쩍 크거나, 열매를 일절 맺지 못하기도 한다. 취미 삼아 명리학을 들여다보며 이런 이야기에 괜히 분이 나기도 했다. 마치 내가 부목인 양, 결실을 맺지 못한 나무인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충분히 자격지심이 들만도 했다.
느릿하게 지나는 부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득 그 위로 갖은 벌레들이 올라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빈약한 몸통에 물이 곧장 차오를 것만 같았다. 적어도 벌레들만큼은 무사히 땅에 올려놔주라. 고된 산행에 발바닥이 저릿한 핑계로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다. 조심스레 물속에 왼발을 집어넣다 머리끝에까지 전율이 일었다. 상상 이상으로 차디찬 호숫물에 발이 얼어붙어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숨을 뱉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내친김에 남은 발을 집어넣으려는데, 마음과 발이 따로 논다. 눈을 질끈 감으며 자, 이제 넣는다, 하고는 넣은 줄만 알았더니. 맨발이 처량하게도 땅에 꼭 붙어만 있는 거다. 그렇게 오른발과 씨름하는 사이, 왼발은 더는 내 것이 아닌 게 됐다. 소싯적에 발레 좀 배웠던 몸의 기억으로 한 발 서기를 시도한다. 실패하면 얼굴까지 호숫물에 처박히는 거다.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된 채, 가까스로 부목을 뭍으로 끌어왔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시뻘건 양말이라도 신은 듯한 왼발을 둘둘 말고는 부목 곁에 주저앉았다. 슬쩍 더운 참이었지만 더위는 돌처럼 굳은 왼발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무는 정말이지 몸통이 비어 있고, 된통 썩어 있었다. 그래. 네가 이렇게 부러져 물에 떠내려가지 않았다면 하면서, 괜히 코가 시큰거렸다. 보기에 근사한 것은 커다란 몸통으로 명맥을 잇는 나무였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썩은 부목도 제 역할이 있었다. 물에 둥둥 떠가는 게 무슨 소용이냐 혀를 찼대도, 그는 그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거다. 나는 부목에서 고개를 돌려 호수를 바라보며 연신 눈을 깜빡였다. 그때 그 곁에 앉아 붉어진 것은, 부러질듯한 왼발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