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최민석>을 읽었습니다

by 하민혜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피츠제럴드와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뻑적지근하게 갑갑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정체가 무언고 하니 여럿 있는데요. 우선 피츠제럴드의 모친이 머금었던 열등감을 아들에게 내내 물려준 점입니다. 다른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에도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죠. 교양을 강요하고,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에 진학시키려 하는 엄마가 피츠제럴드의 엄마뿐일까요. 대학을 자퇴한 제가 아이들을 명문 대학으로 입학시키고 싶은 욕구가 일지 않는 건 아닙니다. 분명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요. 애당초 그런 사회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럼에도 나와 다르게 그런 세계에 몸을 담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어떤 마음도 내키질 않지만 후자를 달성코자 노력한 피츠제럴드의 모친을 보며 괜스레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이라는 명문에 입학을 해낸 아들이니, 그녀는 아마 자화자찬했을 테죠. 자신의 '상승'욕구는 옳았고, 아들에게 그것을 물려준 일에 대해 일말의 후회는커녕 얼마나 떠들고 다녔을지 알 것 같아요. 어쨌든 보수적인 명문 대학에서, 그보다 더한 '코티지 클럽'이라는 문화를 통해 피츠제럴드가 느낀 건 더없는 계층 간의 차별이었어요. 이건 그가 프린스턴을 자퇴한 것과 그의 작품 <낙원의 이편>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요.



"난 이 좁아터진 곳에서 편협한 속물 짓을 하려니까 역겨워. 넥타이 색이 어떻고 외투 천이 어떻고 하는 걸로 사람을 가르지 않는 곳에 가고 싶어."


"그럴 순 없어, 톰."에이머리가 못을 박으며 말을 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서서히 날이 밝았다. "이제 넌 어디를 가더라도 너도 모르게 '뭐가 있고' '뭐가 없고'의 기준을 적용하고 말 거야. 좋든 싫든 간에 우린 너한테 도장을 찍었어. 프린스턴 유형이라고!"
<낙원의 이편>150p



진절머리를 느꼈는지 몰라도 피츠제럴드는 속물 그 자체로 살아갑니다. 마치 폭력적인 아버지를 증오하며 본인 역시 그런 생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죠. 그의 생은 온통 방랑벽과 술, 그리고 고급 호텔의 장기 투숙으로 이어졌어요. 물론 점점 싸구려 여관으로 바뀌긴 했지만요. 개츠비가 매일 밤, 바다 건너 반짝이는 녹색 불빛을 응시했던 것처럼, 피츠제럴드 그 자신도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욕망했다는 느낌이예요. 살아서는 닿을 수 없다는 걸 그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고 개츠비를 통해 증명했죠. 이 점이 안타까웠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명하는 삶을 사는구나. 결국, 누구나 승리하고 있다는 개리 비숍의 말이 옳아요. 내가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백프로의 삶을 살아가는 거죠. 많은 돈과 명예, 성취를 가진대도 개츠비의 장례식이 쓸쓸했던 것처럼 피츠제럴드 역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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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의 장례를 상상해 보았어요.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거나, 최소한 많은 이들이 나를 떠올리며 울고 웃어주길 바란단 이야길 들을 때마다 정말은 공감이 가질 않았던 게 제 본심입니다. 솔직한 제 마음은 사랑하는 이를 두고 먼저 떠나고 싶지 않은데다, 두 번째로 장례식이 어떻든 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성대하기보단 가족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몇이 모여 진심으로 애도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단 생각입니다. 어디까지나 대대적으로 떠들고, 모르는 이가 나의 죽음을 살피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사람은 왜 죽었대? 글쎄, 하는 식으로 일면 가십거리처럼 떠돌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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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는 고작 마흔넷,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써댄 단편들이 있긴 하지만, 생전에 빛을 발한 작품은 <낙원의 이편>뿐이었어요. <위대한 개츠비>는 그가 죽고 10년이 흐른 뒤부터 인기를 떨쳤다고 합니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의 생을 따라가면 그의 상처를 들쑤시게 되죠. 철철 피가 흘러도 기어코 쑤셔대는 통에 읽는 내내 조금 힘들었어요. 과거 미국 사회라곤 하지만 지금에도 버젓이 살아 있는 욕망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제가 느꼈던 사회 계급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그 민낯을 본 것만 같아 추악했어요. 한국인의 역사 특성상 분류하고 배척하길 좋아한다고 여긴 적도 있지만, 미국은 물론 전 인류적인 이슈라는 걸 압니다. 책상에 선을 긋고 넘어오지 못하게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데요. 나와 너를 나누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인가 싶기도 하고요. 어쩌면 역사를 통틀어 분별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아픔이지 않나 하는 통찰도 있었습니다.



고전살롱을 통해 만난 클래식 클라우드의 <피츠제럴드>였습니다. 매력적인 개츠비를 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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