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am5:30

뉴스의 시대를 읽고

by 하민혜

지난 토요일 새벽, 어김없이 책 모임을 가졌다. 새벽 5시 언저리에 모이는 이 분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이번 책은 내가 선정한 '뉴스의 시대'였다. 알렝 드 보통이 JTBC에 나와서 손석희 아나운서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책을 구했다.


https://youtu.be/GM6zaNqNeK0


알렝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는 사랑에 대한 철학을 담은 저서를 주로 남겨왔고,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한국에서 유독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하는데, 기타 그의 이력은 차치하고 나 역시 그의 글을 사랑한다.


'뉴스의 시대'는 조금 뜬금없는 느낌이었다. 늘 사색하고 글을 적는 그는 왜 '뉴스'에 주목했을까.

작금의 시대에 뉴스 즉 정보, 소식은 유튜브(Youtube), 트위터(twitter)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진다. 우리는 수시로 무분별하고 산만한, 정보의 난발을 마주한다. 물론 누구든지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지적 자유 앞에 '평등함'을 느끼는 수도 있겠다. 다만, 신뢰성 없는 정보의 오류 또는 무의미한 콘텐츠들에 잠식될 우려 또한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온갖 이례적인 사건들을 이처럼 단호히 추적함에도 불구하고 뉴스가 교묘히 눈길을 회피하는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뉴스 자신, 그리고 뉴스가 우리 삶에서 점하고 있는 지배적인 위치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면서 말이다.
철학자 헤겔이 주장했듯,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선진 경제에서 이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뉴스 타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교회의 시간 규범을 따른다. 아침 기도는 간략한 아침 뉴스로, 저녁기도는 저녁 종합 뉴스로 바뀌어왔다."


- 뉴스의 시대, 알렝 드 보통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를 읽으며, 아차 싶었다. 그가 뉴스(저널리즘)에 주목한 이유. 언론이 사람들의 무의식을 침잠하는 그 위력은 가히 종교를 대체할 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아무 의식 없이, 별다른 주의 없이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한다. 때론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이따금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이런 콘텐츠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고 또한 무엇을 잃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한 콘텐츠를 통해,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과 같이 의식이 사로잡힌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분명 누구나 볼 수 있는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나만 아는 비밀이라도 되는 양 정보를 흡수하고 마음을 내어준다. 철학자와 다름없는 그가 왜 '뉴스'에 주목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대중은 수많은 창작물들의 가치를 분류하고 평가해야 하는 부담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진실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고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콘텐츠를 피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적 표현은 의미와 가치가 있는 작업을 구성하고 공유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43p-



부끄럽게도 나는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대체로 터무니없는 숫자,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사건과 사고,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않은 비극 등 내겐 현실감이 없어서인 듯하다. 또한 뉴스는 내게 그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그 어떤 해결책을 암시하거나 제안하지 않고 지극히 따분한 말투를 고집한다. 신랄하게 욕을 하고 분노에 가득 찰만한 비극을 읊어대는 어투에선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달나라 이야기를 하는 로봇 같달까.


하지만 이렇게 놀랄 정도로 관심도가 낮은 것이 전적으로 대중의 잘못은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시청자들과 독자들이 외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가 특별히 천박하거나 고약해서가 아니고, 사건 자체가 지루해서도 아니고, 다만 뉴스가 충분히 호소력 있는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면 어쩔 것인가?

-'뉴스의 시대' 알렝 드 보통 95P-


나를 위한 변명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알렝 드 보통은 언론이 그들의 책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뭐랄까, 고객 맞춤이 안된달까. 이는 그들이 장사꾼이라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언론은 시민을 위해야 할 마땅한 중책을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은 그저 현실의 경찰서나 세무서가 아니다. 저널리즘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국가적 삶의 모든 사안을 다루는 망명정부다.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뉴스의 시대' 알렝 드 보통 77P


안타깝게도 나의 부모님 세대는 어쩌면 정보에 대한 판단력이 좀 더 떨어질 수 있다. 뇌 기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세대적으로 제한된 언론의 가두리 안에 사셨던 세월의 보상 때문일지 모른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유튜브나 트위터에서 전해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가 믿을까 싶은데, 바로 우리 부모님이셨다. '음모론'에 깊이 빠져든 부모님은, 코로나가 그리고 환경 문제가 모두 딥스 세력의 계획이라고 철저히 믿고 계신다. 평소 책도 많이 읽으시고, 무엇보다 지식인인 두 분께서 판단력을 잃은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 명백하게 한쪽 정치 세력을 짓밟도록 몰고 가는 콘텐츠라면, 그 의도가 무엇일지,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신뢰할만한지 의심해봐야 할 일이다. 부모님 세대는 물론이고, 반대로 자아가 분명하지 못한 아이들, 청년들 역시 무분별한 콘텐츠로 인해 자칫 외로 설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반드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오남용 된 콘텐츠들은 세상을 끌고 갈 꿈나무들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고, 그들은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뉴스는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성공담을 늘어놓고는, 우리에게 만족과 성숙함을 느끼라고 한다. 즉, 거물의 성공에 조용히 기뻐하고, 기업가의 도전정신에 감명받고, 예술가의 국제적 명성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중략>.. 어떻게 그런 성취를 거둘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모를 때 오히려 타인을 가장 시기하게 된다. 언론이 좀 더 친절하다면, 타인이 거둔 승리를 그저 신비롭고도 당연한 사실로 묘사하기보다는, 그들이 승리하기 위해 어떤 걸 쏟아부었는지 정확히 분석하는 데 막대한 힘을 들일 것이다. 언론은 성공담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실제로 모방할 수 있는 사례연구로서 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기사를 읽으며 공허하게 찬양하거나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대신에 말이다.

'뉴스의 시대' 알렝 드 보통 198p


뉴스를 접할 때 내가 느꼈던 모든 감정에 대해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별히 '시기심'에 대해, 또 인간의 '편향'에 대한 설명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 모두가 이런 감정에 대해 솔직해야만 하고, 외면하고 억눌러선 안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언론은 사람들이 뉴스를 통해 느낄 감정을 가늠해 보고, 과연 무엇을 제시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중들이 그저 무지하고, 분노하고, 지랄 맞다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그는 언론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우리의 삶을 조명해보자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업은 실패하고, 대다수의 선수들, 연예인 지망생, 낙오자들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것이 더 사람다운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뉴스는 사회 저변을 보여준다는 명목 하에 실제 삶보다는 0.1%의 삶을 조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정보를, 그리고 그에 따른 감정을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현대 세계가 셀러브리티에 목을 매는 한 우리는 부박하기보다는 불친절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경로가 되었다. 또한 존경은 친절한 행동 같은 명성과는 무관한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잡지의 표지 인물이 되어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명성을 향한 열망들이 사그라지길 바란다면, 셀러브리티 뉴스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그 뉴스에 대한 검열을 시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친절, 인내심, 배려 같은 미덕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말이다.
'뉴스의 시대' 206p


그는 많은 이들이 셀러브리티명성에 목을 맬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명성을 가진 이들의 특권은 결국 사람들의 친절존경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존엄호의존중받기 위해 셀러브리티가 되고자 애를 쓴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더욱 친절하고, 다만 평범한 삶 속에서도 품위에 대한 욕구를 충족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셀러브리티가 오늘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는지가 아니라 그들의 지고 지난한 프로세스에 주목해야 한다. 언론은 그들의 성취를 하루아침에 이루어낸 결과인 듯 신성시하며 비춰선 안된다. 그보다 그들이 성취에 이르기까지 밟아간 고군분투를 세밀하게 조명해야 한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역경을 헤쳐나가기까지 어떤 마음가짐태도를 가졌는지 크게 다뤄져야 한다. 그로써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시기심을 다독이고, 스스로의 삶에 적용할 만한 교훈을 얻는 데 초점이 맞춰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뉴스가, 즉 언론이 '인생의 시뮬레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셀러브리티의 성공 사례를 통해, 그리고 이웃의 비극을 통해 우리는 겸허해지고, 최선의 방안을 그려볼 수 있다. 비극적인 소식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 또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을 성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안에는 내면 탐사라도 시작한다면 당장 밖으로 나가라고 협박해야 할 난감한 진실들이 수없이 많이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길 정말 간절히 피하고자 하는 그때가 바로, 불편하지만 잠재력 있는 생생한 생각들을 배양하는 순간이다. 뉴스가 우리를 붙잡아 매는 순간도 바로 이때다.

'뉴스의 시대' 289p


결국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모로 돌아가도 '자기 성찰'이다. 나태하게 자신을 방치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리하게 과신하는 일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콘텐츠를 따라 잠식되어가는 스스로를 놓쳐선 안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나 자신이라고 믿어도 될까. 내가 '알고 있다'라고 믿는 것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보를 보고 듣고, 그저 이끌려 간 것은 아닐까.

그는 뉴스가 우리를 붙잡아 맨다고 했지만, 모든 SNS와 콘텐츠를 포함한다는 생각이다.


끊임없이 의식을 조종하는 콘텐츠를 알아차려야 한다. 넘치는 정보들을 통해 우리는 과연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 도리어 제 발에 걸려 넘어질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의 태도를, 마음 상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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