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역행자'를 읽고

by 하민혜

지난 토요일 새벽 독서모임으로 '무르 읽기'가 열렸다. 대체로 토론이 길어질수록 힘을 잃고, 고단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 무르 읽기에서 매번 3시간가량 또는 그 이상 함께 숙론을 해도 지치지 않을 뿐 아니라, 알 수 없는 기운을 얻어 나오곤 한다. 해서 모임이 있는 날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날인 경우가 많다. 밤이 늦도록 주체가 안 되는 날이 있을 지경이다.


이번 모임에 선정된 책은 한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자청의 '역행자'였다. 보통 책을 읽다가 페이지를 미처 넘기지 못하고 되새김질하는 경우가 있다. 한데 자청 특유의 글투와 상세한 예시들 덕에 오랜만에 쉽게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삶에 열정이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그리고 사회 초년생이나 방향을 못 잡고 있는 주변 누군가들에게 선물하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행자'에서 이야기하는 자의식 해체, 정체성 만들기, 유전자 오작동 극복에 대해 정리해보자.

자의식 해체란,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메타인지와 관련이 깊다. 다른 사람을 보듯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특정 상황에 따른 자신의 감정 변화를 탐색하고 인정하며 전환하기를 요구한다.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그는 독서를 권한다. 무의식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우리 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역시 스스로가 낙오자라고 여기던 시절에 독서를 통해 마인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역경을 딛고 이만큼이나 성공했다고? 나도 가능하겠는데?'


유전자 오작동 극복이란, 말 그대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우리를 관찰했을 때 유전자의 작동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오류를 알아차리자는 이야기였다. 원시 시대에 호랑이에게 덤비거나 낯선 무언가에 다가가는 이들은 대다수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남은 후손인 우리는, 겁쟁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자청의 말에 따르면 우리 유전자는 조심성이 강하고, 전체의 일부만 보고 어림짐작하며 평판을 신경 쓴다. 이득보다 손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손실 회피 성향'은 인지 심리학에서 접한 이야기이다.


여기까지 앞부분에 그의 스토리 전개를 따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 방법까지 책을 통해 만난 그는 친절하고 즐거웠다. 자청은 책을 읽는 행위와 글을 쓰는 행위를 무척 강조한다. 인생 공략집이라고까지 표현을 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책을 읽으라고 설파한다. 그가 가진 그만의 원칙이 돋보인다. 때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뚜렷한 삶의 원칙을 가진 이들에게서 희망을 엿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아! 이렇게만 하면 되는구나!' 생각이 들만큼 명확한 방법을 일러준다. 과연 그의 말대로 또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이야기하듯 원칙이 있지만 실천 않는 우리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승승장구하는 시기에 들어서 있을 때면 이 공이 나의 어떤 '방법'에 의해서라고 생각이 든다. 실제 어떤 방법이 일조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은 꽤나 많은 부분이 그들의 원칙과 실천에 있음을 인정한다. 자청의 글에서 말하듯 삶을 게임으로 놓고 보았을 때, 일종의 치트키가 되어주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인생은 짧지 않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가 끝까지 내달리는 경우도 있지만 분명 크고 작은 실패를 맞이할 수 있다. 추락하는 시기에 발악하며 재기에 성공하는 이들도 있고, 그대로 내리 꽂힌 채 인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쉽게도 모든 성패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 착각하여 우월감을 느끼거나 또는 열등감을 느끼는 수가 있다. 과연 그럴까? 과연, 이 모든 일들이 나의 방법 때문인 것일까?


나는 영업직에 있으며, 제법 벌고 있지만 일에 들이는 시간은 하루 중 세네 시간가량이다. 그 이상이 되는 날도 있겠지만 그 시간조차 쓰지 않는 날이 훨씬 많다. 이 일에 주말을 반납하는 일은 일 년 중 세 손가락 안에 들고, 그나마 평일 일하는 시간(오전 9시~3시) 중에 요가를 다니고, 멘토를 만나고, 미술관을 가기도 한다. 고소득을 유지하다 보니 나의 일하는 방식과 원칙을 들고 사람들에게 강의를 한 일이 있다. 돈 버는 방법에 대한 강의도 해본 일이 있다. 때로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강의든 무엇이든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 방법을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게 방법이 있긴 한 걸까? 돈 버는 일을 그저 요행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런 일들이 애쓰고 고된 노력을 통한 성취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부부 사이가 매끄럽고, 부모로서 자녀와의 관계도 문제가 없이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있다. 어찌 보면 부러움을 살만한 이들을 찾아 그 비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그 과정에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질 테지만 정작 그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애써서 성취한 것이 아니라, 애쓰지 않음이 도리어 그 비결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 또는 연인이라는 관계 속에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나의 '방법'과 '생각'에 사로잡히는 일이 문제를 일으킬 때가 많다. 그렇게 애쓸 때, 돈이든 관계이든 '노력하는' 마음과 행동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일들이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말을 다듬어본다면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돈이든 관계에서든, 내가 원하는 어떤 상태와 상황을 위한 애씀이 집착이 될 때를 말한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크거나, 노력을 떠나 과한 욕심을 내거나, 가족에게 서운한 일이 많은 경우이다. 이런 경우 애를 쓰면 쓸수록 돈은 멀어지고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은 반드시 사회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자신을 몰아붙이고 극한으로 치닫더라도 때로 실패하고 비난받을지라도, 인정받기 위해 더욱 칼을 갈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런 삶을 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과연 그런 성공을 원하는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원하는가. 앞장서서 돈을 벌거나, 존경을 받기를 원하는가.


그동안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이들처럼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서가 솔직한 답일지 모른다. 자청이 설명한 자의식 해체나 유전자 오작동만이 우리의 실패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의식을 해체하고 유전자 오작동을 비켜가서 그의 말대로 '역행자'로 살아간다 해서, 반드시 사회적으로 성취가 뛰어나고 남들 위에 서서 원칙을 설파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열정은 가득 하나 도대체 우왕좌왕하는 이들에게 자청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만큼 어떤 단계에서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애쓰지 않는 것이 방법이라기 보단, 자청의 말대로 방법이 있다는 편이 훨씬 듣기 좋다. 이래서 사람마다 그릇이 있다고 하는지 모른다. 활기 넘치고 돈 버는 방법을 상세하게 적고, 사람을 들끓게 하는 그의 에너지가 존경스럽다. 배울 점은 배우고 노력을 하되,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노력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리라 강하게 반동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애쓰고 오르며 성취하는 것만이 내가 삶에 온 목적이 아닐 것이다.


이태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수시로 올라온다. 축 쳐지는 마음을 따라가지 않고, 오랜만에 514 챌린지를 참여했다. 이른 새벽 조용히 눈을 떠 스트레칭을 하고 명상을 했다. 5시가 되자 김미경 라이브에서 20여 분간 강의가 시작되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괜찮아'라고 이야기해주신다. 정말 괜찮다. 어떻든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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