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결에 세월에 맞선 바람과 빗길이 아로새겨져 있다. 할머니 얼굴 밭엔 굽이진 인생의 모양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영민했던 그녀는, 아흔이 넘는 나이가 무색하게 늘어진 눈살 틈으로 비치는 맑은 눈빛이 영롱하다. 스물셋, 나는 그녀의 따스한 무릎을 잡고 함께 앉았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엄한 그녀의 웃음과 울음을 한꺼번에 맞이했다. 한 시대의 폐막에 서걱거리는 목소리로 온갖 설움을 쏟아내셨다. 어떤 말로도 심정을 다 할 수 없으리라 예상하지만, 부족한 말만큼이나 나를 향한 관심도 적은 줄로 안다. 그 해 할머니의 맏아들인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임무를 다했다는 듯 손을 펄럭이며 갈라섰다. 할머니는 눈물 섞인 말 결에 지갑을 열더니, 곱게 간직한 사진 몇 장을 내미신다. 첫 손주인 언니와 애틋한 막내 손주, 남동생이었다.
바라지 않았던 둘째 손녀를 손님처럼 앉혀 두고, 다른 손주들 사진을 내밀며 지극한 사랑을 호소하신다. 적막한 벽에 해맑은 언니와 남동생의 사진들이 지나온 시간만큼 낡아 달랑거렸다. 셋이 찍은 사진 하나에 작게나마 어린 나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늘 그렇듯 할머니의 등을 말없이 토닥인다. 그녀는 바지런히 반짝이는 눈에 떨어지는 물을 덧없이 닦아내신다. 짓눌린 눈물방울은 잘게 나뉘고 틈이 많은 손등 위로 동그랗게 자리했다. 나는 여린 방울이 맺힌 나무껍질 같은 손잔등이, 굴곡진 그녀의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량 선비 같은 지아비를 대신해 온갖 궂은일을 해온 까닭이다. 며느리로서, 가장으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느라 그녀 자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다르지 않을 삶을 살아갈 딸보다야 아들을 원했던 건 시대적으로나, 그녀의 삶으로 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어릴 적부터 쾌활하고 밝은 할머니를 동경했다. 무슨 일에든 척척 나서는 모습이, 동네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여실했기 때문이다. 여장군 같은 그녀를 관찰하길 좋아했다. 지긋이 앉아 돈을 세는 모습, 담백하게 송편을 빚는 손동작과 깔깔대며 터지는 웃음 사이 드러나는 분홍빛 잇몸을 바라보았다. 방에 홀로 창밖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훔쳐보다, 몰래 눈물을 감추는 앳된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붙들어 비밀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아닌데, 감춰야만 하는 일을 혼자 아는 느낌이 들었다. 혹여라도 누가 오진 않는지 망을 보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할머닌 이 작은 손녀가 자라나길 기다렸는지 모른다. 속 끓는 이야기는 텅 빈자리인 나에게 마지못한 양 털어놓으시길.
엄마가 나를 가지셨을 때, 이번만큼은 배가 두둑하니 틀림없는 아들이라며 들뜨셨다고 한다. 태동이 심한 탓도 아들이기 때문이리라 동네방네 떠들어대셨다. 그 이야길 지금까지 반색 없이 꺼내 놓으신다. 얼마나 실망했던지, 죄인처럼 엄마가 고개를 숙였던 그날을. 자신과 같지 않기를, 여성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기도하셨다. 모진 세월에 오죽했을까. 원치 않던 작은 손녀를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애틋하고 씁쓸했다. 나는 셋 중 유독 엄마를 괴롭히며 어지간히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 달린 게 없는 나로서는 실망할 게 빤한 가족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건 아닐까.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곧잘 하는 내게, 할머니는 늘 이모저모 가르치기 바빴다. 집안에 첫째 중의 첫째인 언니보다, 끊임없이 작은 손녀를 불러대시기를 좋아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부름 받는 게 무언의 약속이 성사된 듯 편안했다. 그건 오직 나의 쓸모였다. 태어난 이유가 할머니의 고단함을 덜어드리는 잡일이라도 내겐 충분한 까닭이었다. 태어난 그날부터 할머니와 살던 10년 동안, 나는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복제했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딸인지 아들인지를 물으신 것도 어김없었다. 딸을 낳은 나는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다만 할머니는 부디 하나만 낳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아픈 일이지, 할머니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걸 말하시는 듯했다. 나로서는 아들을 감싸는 할머니를, 손주를 끔찍이 높여 모시는 그녀를 변호하고 싶을 때가 있다. 끊임없이 쓸모를 강요당했던 할머니에게서 나는, 여자로서의 나를 비춰본다. 나는 여전히 나의 쓸모를 조장하고 있진 않은지, 정처 없이 존재 이유를 증명하려 애쓰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