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 울기

by 하민혜


아이가 신을 신는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과거의 어느 날로 흘러간다.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니던 6년 전 어느 날이다. 태어난 지 천일 즘 된 아이는 어설픈 자세로 신을 신으려 용을 쓰고 있었다. 나는 대체로 느리고 굼뜬 편이라, 그런 아이를 가만 지켜보는 날이 많았다. 지금 와 돌아보니, 아이들이 또래보다 재빠른 이유가 거기 있다. 느긋한 엄마는 아이의 서툼을 기다려주기만큼은 누구보다 잘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날 아이는 자신의 발이 원대로 신발 안에 담기지 않는 일에 점차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체크한다. 결국 손이 뻗쳐 나갔다. 시간이 빠듯했다. 아이 발을 한 손에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신발을 들었다. 그때였다. 아이가 온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하는 거다.

엄마가 신겨줄게, 칭얼거리던 아이는 별안간 천둥이 치듯 울어대기 시작했다.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에 나는 잡았던 발을 놓았다. 첫아이를 대하는 모든 게 낯설고 난감한 것은 나만의 문제인 걸까. 머릿속을 울리는 울음소리에 내가 아이에게 무얼 잘못했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늘 그래왔듯 아이를 안고 달래며 문득, 나는 언제 즘엔가 이토록 소리 내 울었던가를 생각한다. 아이의 눈물이 얼굴에 들어차더니 기어코 가슴까지 스민 건, 바로 전 날 늦은 새벽, 내가 소리를 삼킨 눈물을 흘려보낸 까닭이다. 원치 않아도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었구나. 어른은 소리가 작다. 마음을 숨기고 감추기를 잘한다. 가면이 두터워지고 표정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싫으면 싫은 거지, 군소리가 많다. 마음껏 소리 지르는 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울고, 웃고, 사랑하며 사랑받는다.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엄마, 뭐 해?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가슴께까지 자란 딸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짓다 말고, 혓바닥을 입술 가장자리에 붙이며 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이가 맑은 소리로 깔깔대며 웃는다. 어느새 딸의 발은 신발 속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나는 슬리퍼에 발을 가져다 넣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반납하러 가는 날이다. 함께 걸으며 딸이 걸친 나의 겉옷을 만지작 댔다. 아기가 태어나고 10년이 넘는 동안 아이는 어른이 되어가고, 나는 아이가 되어간다. 모진 세상을 견디기 위해 써야만 한다고 믿었던 가면을, 서툴게 벗어내고 있다. 가면 속 보드라운 살갗이 만져질 때면 흠칫, 수치스럽다가도 딸의 미소를 보며 용기를 낸다. 그렇게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된다. 딸은 자꾸만 나를 닮아가려고 노력한다. 아마 우린 영원히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 딸은 내게 영원한 동경이고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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