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사랑받으려는 마음

by 하민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터다. 이혼을 막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실은 혼자 살아가는 것 자체로 두려움이 앞선다. 서로를 짐짝 바라보듯해도 함께라는 것만으로 큰 일 앞에 위로가 될 수 있어서다. 벌거벗은 채 세상 앞에 선 우리는 지푸라기 잡듯 서로를 부여잡는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고통과 상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건 죽음 앞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우린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거라지.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들 때 아픈 건, 그가 아니라 나다. 나는 왜 남편을 사랑할 수 없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사랑이 무언지를 알아갔다. 사랑은 바꾸려 들지 않는 것, 기대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다. 돌을 보듯 무심한 마음과 닮았는지 모른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나의 기대를 깎고 털고, 무릎을 꿇렸다. 나로서는 이 사람에게 더는 바라는 게 없다고 여겼다. 단지 수차례 마음으로 이혼을 그렸던 건 바라는 게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나는 그에게 나를 인정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말없이 집을 청소하고, 밥을 차렸다. 빚을 갚고 돈을 벌었다. 불평하지 않고 많이도 웃었다. 애달프지 않고 미소를 지니려 했던 것도, 불만을 삼켰던 것도. 노력하는 나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던 거다.


관계의 문제는 나의 문제다. 뜨끈하게 세상을 알아가는 줄 착각하지만 생떼를 부리는 아이와 다를 게 무언가. 정말은 존재의 외로움이 두려워 혼자이길 자처하는지도 모른다.


문제를 세워 놓자면 집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나는 그를, 그리고 그는 나에게 결코 닿을 수 없는 지점이 많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한심한 여자인 듯 바라보는 그에게서 나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곤 한다. 함께 있는 곳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이대로 끝을 내면 나는 과연 이런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건 나와 이 사람의 문제일까, 전인류에게 주어진 과제일까. 나로서는 지금 이 세계가 전부다. 내 마음이 나의 우주이므로, 이별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담 도로 뜯길 마음을 물풀로 발라 붙여 놓아야 하는 걸까.


나는 이 사람과 관계를 붙일 방법을 안다. 그는 늘 그렇듯 해결책을 모르거나 모른 척한다. 언제나 문제에서 손 떼고 강 건너 불구경이다. 뒤돌아 한숨만 쉬며 갑갑해한다.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결국 나를 물어뜯고 문을 쾅 닫는 식이다. 나는 먼저 사랑의 눈빛을 보내거나 그의 손을 잡아야만 한다.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푼다. 밖에선 예의를 차리고 사람 노릇하다가도 제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엄마를 깔아뭉개는 수가 있다. 가장 편안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그걸 너무 잘 아니까.


나는 남편의 엄마가 아니다. 불편한 건 아이에겐 가능한 사랑이 왜 남편에겐 안될까, 싶은 거다. 사랑을 받고 싶은 내가 밉다. 사랑을 주지 못하는 마음에 수치심이 든다.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죄책감이 느껴진다. 3년 전 크게 불거졌던 문제다. 바라는 건 여전히도 그와 나의 평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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