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은 목적일까, 수단일까.
삶은 여행이다.
나만큼이나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하는 딸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 전 혼자 여행 가기를 즐겼던 때가 있다. 온전히 혼자였던 날도 있었고, 더러는 곁에 연인이 붙은 날도 있다. 한 두 달이고 여행을 떠날 때면 연인을 두고라도 홀로 가기를 택했다. 지금에라고 그 맛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은 후로 지난 10년간 혼자 여행을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유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다. 남편이 싫어할 걸 알아서다.
딸은 이탈리아에서 혼자 헤매는 소싯적 사진을 뒤적이며 말했다. "근데 엄마, 이렇게 혼자 다니면 심심하지 않아?" 경험이 많지는 않았대도 친구나 연인과 함께했던 여행을 떠올렸다.
"누구와 함께인 여행이 덜 지루하긴 하지. 다만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보고 싶은 것을 편안하게 볼 수만은 없어. 함께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나와 다를 수 있으니까. 마치 결혼 생활과 같아. 매 순간 누군가와 함께라는 재미를 위해서는 상대 눈치를 봐야 할 의무가 있어. 여행 내내 마음이 상한다면 둘의 여행을 망칠 테니까."
삶을 여행이라 말하는 건 비유가 아니다. 지구라는 별에 이 몸에 꼭 붙어 영원히 머물 수는 없으니까.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한 철 여행과 다를 게 무얼까. 떠나는 건 명백하다. 남편이나, 아이들, 부모님, 친구까지도 모두 여행에서 스치는 인연이라고 본다.
짧다면 짧은 여행동안 우리는 내내 누군가와 바싹 붙어 다니길 바랄 수 있다. 아무렴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우리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이니까. 발붙인 땅과 숫자에 매달려 본들 그마저도 헛헛하다.
"이 여행동안 너와 함께라서 감사했어." 이 얼마나 따듯한가. 감사할 대상을 찾기보단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이기를 바라는 게 본심인지 모른다.
'너는 여기 멈춰있고 싶고, 나는 더 나아가고 싶다. 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 들어가 머물고만 싶고, 나는 때로 사람들과 섞여 놀고 싶다. 너는 가진 걸 움켜쥐려 하고, 나는 더 많이 내어놓고 싶다.'
삶은 여행이고 특별히 부부나 연인은 여행의 동반자다. 서로를 배려하는 데 앞서 함께하기 이전에 최소한 어떤 여행을 바라는지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서로의 여행을 뭉갤 필요는 없으니까. 기왕이면 우리 모두 각자의 여행을 원대로 마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