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위게레(navigere)

by 하민혜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배(navis)와 항해(agere)가 합쳐진 나위게레(navigere)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바다 위에서 항해를 할 때 뛰어난 선원이 갖춰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우선 바람을 알아차리고, 파도를 읽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목적지를 향한 길이 돌아가는 듯 보이더라도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이 훌륭한 항해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한 바다를 직선으로 빠르게 항해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느릿하니 돌아가야만 한다.

23살 난생 처음 운전을 했다. 실은, 차를 구입했다기 보단 넘겨받았다고 해야 맞다. 당시 사업장을 운영하던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돈이 없다기보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남동생은 20살이 되자마자 분에 넘치는 차를 전액 할부로 구입했다. 두 달이 지나 감당이 안되는 느낌에 내게 차를 넘기게 된 것이다. 때마침 차를 구입할 수도 있어 동생을 도울 겸 차를 받았다.


새까맣고 귀엽게(?) 문짝이 두 개 달린 쿠페 차량에 내비게이션은 달려있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서일지 이내 곧 적응했다. 그때에만 해도 핸드폰에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처음은 수없이 길을 잃었고 그냥 이정표를 보거나, 길을 물어 다녔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불편하다. 가까운 길에야 그냥 다니긴 하지만, 네비를 키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기 위해선 출발지와 목적지 두 가지가 필요하다. 만일 목적지가 없더라도 출발지 즉 현재 나의 위치를 올바르게 잡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네비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서이다.

빠르게 목적지에 닿는 것이 삶의 목표인가 하면 우물쭈물 답을 망설이게 되지만, 부산을 가고 싶은 마음을 알고 있는가는 중요하다 생각한다. 원하는 곳이 부산인데, 해남에 가게 된다면 유한한 삶의 끝에 맞닥뜨릴 당혹감은 어찌할까. 하여 어지러운 세상 속에 우선해야 할 것은, 현재 나의 위치(값)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때로 길을 잃기도 하고 헤쳐가기를 반복하는 것이 삶이더라도, 잠시 잠깐 나의 위치를 스스로 알아차리려 노력해야 한다. 또 목적지를 끊임없이 변경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부재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만일 나의 위치를 알아차리지만, 늘 아무런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 무엇도 설정하지 않은 어떤 길에 멈춰 있다면 해가 지는 어둠과 돌부리를 피할 수 있을까? 애초에 삶의 어지러움은 피할 수 없는지 모른다. 어떤 길에든 고난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선택한 길에서의 고난이라면 '목적지'덕에 고통을 견뎌낼 이유가 생긴다. 혹자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는지 모른다. 어쨌든 일말의 희망이 없는 고통은 도무지 이겨낼 마음이 들지 않으니까.


마흔 즈음이 다가오니, 나이 듦에 대하여 또한 삶의 목적에 대하여 깊이 사유할 여유가 있다. 이젠 아무 목적 없이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님을 안다. 그 또한 고행이고 고난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고로 나의 위치, 상황, 감정 등을 알아차리고 늘 목표를 설정한다. 그 길에서 방향을 잃거나 넘어지더라도 또다시 나를 돌아본다. 때로 지치고 넘어질 때에는 끝내 늙고 스러질 나를 떠올리며 이내 주저앉고 싶은 때도 있다. 다만 죽음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이 길이 끝나지 않음을 안다. 내가 포기하는 그 순간조차도 나는 어떤 길에 서있음을 알아차린다. 시지프가 언덕 위로 올린 돌은 끊임없이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나이 듦에 대하여, 또는 휘몰아치는 태풍을 만날 때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알아차리고, 그때 그때에 대처해 나가는 일뿐이다.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나무학교' 문정희



나이 듦은 젊음을 잃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품어가며 풍성해지는 것임을 알기로 한다. 그렇게 내가 결정한 길 위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울창해지기를 바라며 조금씩 나아가기로 했다. 그것이 삶의 부조리를 향한 생의 몫임을 알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작가의 이전글목적(의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