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0만 부 판매, 전 세계 30개국 출간.
손원평의 <아몬드>를 읽었습니다. 빠르고 자극적인 전개로 눈을 떼기 어려웠어요. 장편이래 봐야 300페이지를 넘지 않는데도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과거엔 먹고살기 바빠 책을 자주 읽지 않았어요. 어쩌다 읽더라도 직접 대고 나를 위로하거나,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 계발 서적 정도였죠. 더욱이 소설을 읽지 않았던 건 남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들여다봐야 하는가, 싶어서예요. 세세한 감정 묘사를 읽다 보면 피로가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이런 저를 생각하면 애초에 공감 능력이 부족한가 싶습니다. 책에 나오는 윤재를 보며 아차, 싶었네요.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제 머릿속 아몬드(편도체)가 어쩌면, 평균보다 미세하게 작은가 생각했어요. 어릴 적에, 그리고 20대에도 주인공처럼 저 역시 '로봇'이냔 말을 들었습니다. ㅠ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넘어지거나 아픈 아이에게 달려가는 건 엄마인 제가 아니라 남편이고요. 책의 주인공인 윤재는 어릴 적부터 갖은 수모를 겪습니다. 자연스레 웃어지지 않고, 슬프려야 슬플 수 없다니 어떤 느낌일까요? 만일 저의 공감 레벨이 6 정도라면 윤재는 0.01 정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 후에는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둘과 경찰 한 명. 그리고 끝으로는 남자 자신이었다. 그는 정신없는 칼부림의 마지막 대상으로 스스로를 선택했다. 자신의 가슴 깊이 칼을 찔러 넣은 남자는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숨이 끊어졌다. 나는 그 모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12p
윤재는 타고나길 편도체가 고장 났다고요. 감정, 특별히 공포와 공격성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니. 어쩌면 소시오패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통을 모르지 않지만 슬프지 않고. 기쁘지도 않다고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에 서툰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따듯한 엄마와 할머니에게서 감정을 '학습'받지만 쉽지 않아요. 우리만 해도 타인의 감정을 '머리로'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요.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이를 보면 가슴이 짓눌리는 건 본능인데, 그걸 학습한다고 상상하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공감은 무엇일까요? 과도한 공감은 히틀러를 총통으로 세워 무고한 이들을 학살하게 했습니다. 편을 갈라 타 집단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역사는 반복되고 있죠. 공감의 부작용이랄지, 뒷면이랄지. 내 편이 하는 이야기엔 과도하게 동의하고 그 외는 적으로 내몹니다. 우리는 수렵 채집기의 부족 본능을 지녔다고 해요. 네 편, 내 편 가르는 건 저절로 작동하는 본능인 셈이죠. 우리의 조상은 타자를 혐오하고, 회피를 선택하며 살아남았습니다. 본능을 없애기보단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게 답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184p
가슴이 아팠습니다. 윤재 눈에는 곤이가 단순하고 투명해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그런 곤이를 문제아로 여기는 사람들과 그에 반해 곤이를 믿어주는 윤재에게 감사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편도체는 하등 무슨 의미인가, 싶었어요. 감정을 느끼지 못해 스스로를 '바보'라 여기는 윤재는, 끝에 끝까지 편견 없이 곤이를 바라봅니다. 신의 사랑처럼 보였어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곤이를 살립니다.
-따뜻했냐, 그 품이.
-응. 많이.
솟아올라 굳어 있던 곤이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푸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그 애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다. 얼굴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고 이어서 무릎이 툭 꺾였다. 고개를 푹 숙인 몸이 들썩였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곤이를 내려다보았다.
182p
페이지를 넘기다 결국 눈물이 삐져나왔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저의 공감능력이 5.5에서 6으로 성장했지 싶은데요. 실제 주기적인 독서가 뇌의 회로 간의 연결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독서의 효용은 단지 지식을 얻거나, 방법론을 실천해 결과를 얻는 데에 그치지 않아요.
책에서처럼 아픈 묻지 마 살인이 있었죠. 사실 늘 있어왔고요. 세상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가득합니다. 적을 만드는 우리의 판단이 틀리지 않을지도요. 그런고로 가해자를 단죄하고 싶은데 말이죠. 소설의 끝에 외전으로 <상자 속의 남자>가 담겨 있습니다. 묻지 마 살인이 나던 날, 뒷걸음질 쳤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기를 구하고 의인이 되었지만, 평생 병실에서 몸을 썩히고 있는 형과 동생의 사연입니다. 동생은 누굴 도와주는 일도, 도움을 받는 일도 내내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살아갑니다. 어느 날엔 형이 살린 아이가 자라나, 다른 누군갈 살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 데요.
뭐가 맞고 틀릴까, 정답은 있을까. 잘라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편을 가르는 태도입니다. 편견으로 뭉쳐 옳음을 내세우는 '정의' 말이죠. 무조건적으로 '옳다'라고 믿는 지점이야말로 의도적으로 피해야 할 것 같아요. 일부러 줄거리는 요약하지 않았는데요. 소설은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읽으셨음 하는 책이네요. 두고 뒀다가,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읽게 하고 토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