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이고 호텔이고 펜션이고, 숙박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남의 집에 실례하는 기분. 나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유행하는 한 달 살이를 한창 20대에 소리 소문 없이 자행하던 나였다. 국내에선 아니었대도, 국내 모텔과 다름없는 호스텔에서 1주일씩, 2주일씩도 연박을 했더랬다.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이었던 여행 기간 동안도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남의 집살이에 익숙했다. 방랑객 생활 덕분에 한국의 모텔에 들어서기도 부대끼지 않았다.
결혼하고 금세 아이를 낳았다. 이제 10살인 아이는 왼쪽 팔걸이고, 9살인 아이는 오른쪽 팔걸이다. 우린 침대 위에 삼종 세트처럼 매일 밤 함께다. 20대 내내 밥먹듯이 외박을 하다가, 결혼 후엔 팔걸이들 덕에 집에서 자는 게 익숙해졌다. 나는 잠에 들면 잡아가도 모른다. 매일 밤 숙면에 빠지는 건 축복이란다. 떠돌이 생활을 했던 20대를 지나왔지만, 잠자리를 타는 편이다. 낯선 곳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는 헤맨다. 잠에 들기가 어려울 뿐이지, 잠에 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다.
<아이 러브모텔> 이라니, 백정은 작가를 '인문학 파티'때 본 적이 있다. 눈인사 정도고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마주 본 그녀는 수줍고 귀염 뽀짝한 분위기인데 세상 다 살았다, 싶게 깊은 눈빛과 속내를 감추지 못할 것만 같은 진솔함이 느껴졌다.
"구겨진 구석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곪은 것이 있다면 터뜨려야 살 수 있을 텐데 내가 뭐라고 그녀를 판단하나.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는 불완전에서 완전을 향해 흐르는 인간이 아니겠는가. 고객의 내밀한 사정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 84p
책은 기대 이상이다. 별반 다르지 않을 에세이를 상상했는데, 웬만한 장편 소설만 한 두께에 놀라고. 그녀의 입담(?)에 두 번 놀랐다. 글을 따라 내려가는 눈이 쉬질 않고,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어갔다. 때로 불편한 느낌도 있었는데, 그건 그녀가 남긴 '진상'들의 나열 때문이었다. 왜 아닐까. 모텔은 무언갈 감추기 좋은 장소다. 진상 오브 진상이 모이기 쉬울 터다. 20대 바(bar)를 운영하며 겪은, 별의별 사건들과 사람들이 겹쳐졌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았다.
"남자가 지하철에 올라탄다. 잠시 후 다음 역에서 여자가 지하철을 탄다. 둘은 잠시나마 같은 칸에 머물며 호흡한다. 그렇게 함께 욕망이라는 역을 지난다. 남자는 다음 역에서 내린다. 여자는 남자가 내린 그다음 역에서 내린다. 두 사람에게 지하철은 스치듯 닿은 장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으면 그만이다."
"여전히 속내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그녀는 남자의 품에 슬쩍 안긴다. 그 모습이 마치 물을 줄 시기가 한참이나 지나 메마른 나뭇잎과도 같다. 끝내 발걸음에 담긴 의중은 알 수 없을 테지만, 내 눈에 그들의 사랑은 일견 꽃과 벌의 사랑보다 더 순수해 보인다. 번식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욕망만을 따르는 행위일 테니." 18p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사랑이라고 할까. 시간을 두고 말할까. 행위를 말할까. 모텔 운영자의 입장이지만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사랑을 고찰한다.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랑을 바라본다. 애틋하고 정이 간다. 안 그래도 호감형 작가님인데 책을 읽고 나니 극호다. 어딘지 천연덕스럽고 적나라하지만 여린 마음이 느껴진다. 책을 덮으며 꼭 한 번 마주쳤던 작가님을 떠올렸다. 이 정도면 나도 꽤나 사람 볼 줄 아는 건가 자찬했다. 실물 앞에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조차 사랑스럽다. 나도 그녀도 가식이 없는 사람이라며 괜히 흐뭇하다.
오랜만에 재밌는 에세이를 읽었다. 가독성이 좋은 책의 표본이다. 모텔이란 주제도 색달랐다. 선선하고 서운한 가을바람이 창가 곁을 스쳐간다. 사랑을 추억하고 싶은 분께, 사랑에 빠져있는 분에게, 모텔을 운영해보고 싶은 분에게도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