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단을 볼 필요는 없다. 그냥 첫 계단에 걸음을 내딛어라"
'어떻게 매일을 쓰나요?' '이걸 일주일 만에 썼다고요?' 놀랍게도 왕왕 듣는 말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게 아니라 매일을 쓴다는 것도 재주면 재주다. 답을 한답시고 '그냥 써요.' 라고 성의 없게 대답한 일도 없지 않았다. 실은 내가 뭐라고, 민망했다. 빨리 쓰기나 하지 깊이가 없다고도 들려 부끄러웠다. 그런 중에 어제 누군가가 비법(?)을 알려달라고 장난스레 질문을 던진 거다. 덕분에 간략히 정리해 보련다.
-나는 독서하는 공간과 글 쓰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물론 글을 쓰다 말고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글을 쓰는 책상엔 노트북과 프린터기, 그리고 의자만 배치했다. 노트북 뒤가 텅 비더라도 앞으로 끌어왔다. 작은 책상에 앉으면 쓰는 거다. 효과가 좋다. 먼 귀퉁이에 앉아 부엌을 노려보며 어떤 요리를 할까, 하면 피곤하다. 생각만으로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글 쓰는 책상에 앉으면 그냥 쓰기를 시작한다. 공책에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나는 노트북을 켜고 하얀 화면을 마주한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온다는 건 맞는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비 내리는 창을 바라보다, 보드라운 바람결을 느끼다가, 땅에 솟은 잡초 하나를 매만지다가도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창조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는다. 무언갈 만들어 내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우선 자녀가 있고,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창작물이 있다. 유기적인 생명체든 비생물이든 우리는 평생을 창조하고 산다. 글이라고 다를까?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될 수 있다. 마음을 열자. 다만 누군가 마음 다해 쓴 글을 읽는 건 직관적으로 도움을 받는 길이다. 글을 읽다 미세하게 감정이 움직일 적엔 자연스레 쓰기로 넘어가자.
-판매나 영업 일을 오래 했다. 갖가지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봤다. 직원이나 아르바이트를 뽑는 일, 가르치는 일을 제법 경험했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네 발로 기다가 일어설 적엔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스스로 네 발로 기는 모습을 못 견디는 경우가 많다. 겨우 일어나 비틀거릴 땐 얼굴을 구기고 자존심이 상한 듯 보인다. 우린 누구나 날고뛰는 사람에게 주목한다. 내가 기어 다닐 적에, 비틀거리고 넘어질 땐 누구도 그런 나에게 별 관심이 없음을 기억하자. 자신 있게 기어 다니고, 넘어질 적엔 자연스럽게 툴툴 털고 일어나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특히나 경쟁 구도에 익숙하다. 나와 너를 비교하는 데에 선수들이다. 함정이 있다면 자기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이들하고만 경쟁한다는 거다. 매일 글을 쓰기 위해선 경쟁하는 기분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마음이어야 한다. 어떤 평을 들을까, 하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솟아나는 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헤밍웨이는 노벨상을 받고부터 글쓰기가 더뎌졌다. 작가로서 노벨상을 받는 일은 최악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래. 노벨 문학상을 받고 나면 모를까. 그 이전에 토시 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누군가 뜯어보고 평가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얼굴에 난 뾰루지에 자기 자신만큼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는 목적이 타인 중심에 있는지 나의 기쁨에 비롯한 지를 성찰해 보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에서 타인을 의식하다간 수시로 넘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 그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즐겨보자. 스쳐가는 사람들을 신경 쓸 게 아니라, 글을 쓰는 나를 관찰한다. 내가 나를 관찰하는 건 큰 기쁨이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떼어놓고 볼 수만 있다면, 영업하는 나도 재밌다. 이렇게 보자면 재미없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영화 한 편 본다고 여기자. 우습게 말할 때, 난감해할 때, 당황하고 얼굴이 붉어질 때, 슬플 때 그 느낌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느끼는 거다. 내가 나와 함께다.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가.
유명해지고자 했는가, 도움이 되고자 했는가.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는 건 필요악이다. 그 누구도 다르지 않을 터다. 유명할수록 더할는지 모른다. 다만 사람들의 반응 너머 나의 현상을 즐기자는 말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마냥 기쁨에 넘친다면 누가 말린 들 매일을 쓰게 될 테니.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환희에 넘친다면 말릴 이가 누구겠는가. 나를 움직이는 것도 돌아서서 길을 막는 것도 오직 나 하나뿐이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우리로서는 거뭇한 자의식을 내리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자기 수준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바닥을 기어갈 때만이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걸 즐기면 된다. 어깨 힘을 빼고 아무 말이나 쓸 수 있어야 한다. 논리 정연하지 못하고, 재밌지도 않아. 글에 향이 나면 좋겠어. 바라는 방향이 있는 것은 좋다. 중요한 건 아무도 나만큼 나를 비평하지 않는다는 진실이다. 어느 정도까지만이라도 수준을 올리고 싶다면 그냥 하는 것, 매일 하는 것, 그 이상의 방법은 없을 터다.
바람은 바람대로 소망하되 집착 없이 즐기기로 한다. 아장아장, 함께 걸음마를 떼자.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운 나의 삶을 위해서.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이해되어야 한다. 지금은 더 많이 이해하는 시간이다. 덜 두려워할 수 있도록.
-마리 퀴리(Marie Cu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