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어깨가 주기적으로 앓는 소리를 낸다. 탁, 탁, 타다닥. 반복적인 리듬이 마치 비밀 암호라도 건네는가 싶다. 실은 누군가 어깨를 모로 비틀어 피가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육체가 낡고 병드는 걸 지켜보는 일인가. 10대, 20대, 젖먹이 아이들로 어지러운 30대까지, 정신없이 몸 밖을 내다보기 바빴다. 아무렴 경고도 잦지 않고, 별 관심조차 없었다는 의미다. 늙는 것이나 죽음에 대해 특별히 눌러앉아 잠길 까닭이 없었다.
아이들은 여태 초등학생인데, 언제 즘부턴지 별의별 신호음이 울리곤 한다. 눈이 시렸다가 무릎이 아리다가, 허리가 눅고 요즘은 어깨가 지랄이다. 40대 중반인 남편도 보기 좋게 곳곳에서 앓는 음을 듣는다고 말한다. 다행인지 그 소리는 자신에게나 들리는 정도다. 아직은 덜 여문 질병과 녹슬어가는 과정 어디 즘이다. 외모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몸 이곳저곳으로 생채기까지 나야 하는가, 서러울 지경이다. 어쩌면 인생 과업을 달성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알람이 울리는 건 아닐까. '끝이 다가온단다. 어서 자신을 돌아보라. 더 이상 밖을 쳐다보지 말라.'
가을이다. 낮은 여실히 뜨겁대도 해가 비켜간 하늘이면 살에 닿는 공기가 서늘하다. 10년 전 가을엔 배가 산만했더랬다. 불은 발바닥으로 뒤뚱이며 누런 낙엽을 밟았다. 첫 아이를 만난 계절은 짙은 겨울이었다. 시린 바람에도 아이는 봄햇살처럼 화사했다. 태어나는 계절이 개별로 다를지라도 아기는, 그리고 아이는 봄을 닮았다. 어지간히 푸릇푸릇하다. 어깃장을 놓는 모양도, 뻗대며 뛰어다니는 모습에서도 솟아나는 기운이 여실하다. 봄의 변덕만큼이나 행실이 요란스러운 건 말할 것도 없다.
나의 20대는 암흑 같은 겨울이었지만, 전반적인 시절의 기운은 여름이었다. 팔팔했고 색이 진했다. 내가 맞고, 너는 틀렸으니 강한 비바람도 서슴지 않았다. 풍성했고, 시끄러웠다. 어쩌면 30대까지도 조잡하려니 싶다. 지나고야 그려볼 수 있다. 마흔을 넘지 못한 지금에 30대를 단정 짓기란 어째 시건방지다. 다만 나이를 딱 갈라 봄이고, 여름일 순 없다. 그저 그즈음 여느 계절을 지났다는 걸 떨어져 볼 때에야 느낄 뿐이다.
봄과 여름은 발산의 계절이다. 성공과 실패가 짝꿍이듯 발산과 수렴은 하나다. 삶이 내내 발산일 수 없고, 기어코 수렴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죽음을 수렴이라 봐야 맞다. 가을에 아름다리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에너지를 비축한다. 응축의 힘, 죽음의 계절이다. 그러고 보면 나를 돌아보는 건, 영락없이 안으로 삼키는 일이다. 열정적인 때에 수렴하는 모양이 내키지 않는 건 당연했다.
겨울이 깊다 싶으면 어느새 봄이 다가온다. 나의 삶 역시 굵은 계절 아래 밑도 끝도 없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맞았다. 오늘 하루에도 나는 발산하고 한숨 쉬며 수렴했다. 펄펄 끓는 여름이었다가, 마음이 하늘처럼 높아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라고 몸은 낡아가지만 봄햇살처럼 해맑은 순간도 있다. 몸이 신호를 울린대도, 반복되는 열정과 냉정을 느낀다. 고로 나의 계절이 수렴이라도 무시로 사계절을 살아가련 듯 싶다. 기필코 겨울이 올 테지만 오고 감이지, 끝은 아닐 터다. 비리비리한 어깨를 부여잡고 우울하지 않으련다. 폭 잠에 들고 아침 요가에 힘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