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장사꾼 한다고 했어?

무언가를 판다는 것

by 하민혜

시장에서 흥정을 잘하는 이들을 보는 때가 있다. 실제 그런 분들 스스로가 '장사꾼'인 경우가 많다. 나는 계산이 느리다. 최저가 검색을 잘하거나, 꼼꼼하게 계산하는 일은 거리가 먼 일이다. 도리어 웃돈을 주고 사는 일이 있는데, 상대에게 좋은 일을 했다 셈 치기를 잘한다. 기부도 하는데 서로 도와줄 수 있다며 아까워하지 않는다. 값을 깎으려 하거나, 더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손실을 줘야 하는 일을 대놓고 요구하기가 어렵다.


흥정에 둔하고 셈에 약하면서도 나는 일찍이 '장사꾼'이 되었다. 대학을 다니는 중에 병 돌리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때 알게 된 인연이 많았다. 대학원을 다니는 조 씨 언니는 한남동에 살았는데, 아버지는 중소기업 회장님 어머니는 대학교 교수님이셨다. 평범한 부모에게 자란 나는 그 언니가 반쩍이는 금수저로 보였다. 혼자 사는 집도 제법 으리으리한데, 외제차까지 끌고 다녔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성악 전공의 언니는 늘 여러 가지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노래가 있다. 파리넬리(Farinelli The Castrato) OST의 (Lascia chio pianga)이다.


eche sos piri la li berta


과하게 발랄한 언니가 즐겨 부르는 이 노래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울게 하소서'였다. 15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이 노래 가사를 기억한다. 언니가 내 앞에서 그만큼 많이 부르기도 했고, 제법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태닝한 언니는 화려했고, 반짝였다. 언니집에 가면 옷이며 가방이며 온갖 물건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언니가 입지 않는 옷들, 갖은 액세서리 등을 건네받곤 했다. 받는데 부끄러움은 없었다. 받으면 좋긴 한데 그다지 갖고 싶은 욕심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차피 버릴 거라며 주는데, 나도 필요한 것을 받는 게 아니라선지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다. 약간 글래머러스한 언니는 매일 다이어트를 운운하며 요가 자세를 취했다.


"자기야~ 오늘은 내가 시간이 안된다고 했잖아~ 오구~ 알겠어~ 다음 주에 만나장~"


"어머 오빠. 당연하죠~ 오늘 저녁 8시에 봐용~ 나도 사랑해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서 두 남자와 애교섞인 콧소리로 통화를 한다. 나는 언니가 좋았다. 이유는 없었다. 밝고 예뻐서도 아니었고, 아무렇게나 남자를 만나는 점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것에 대해선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냥 언니가 아이처럼 해맑아서 좋았고, 어떤 면에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언니도 나를 좋아했다. 나는 언니처럼 가볍지도, 유쾌하지도 않았으니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늘 언니가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주로 나는 들었다.


늦은 저녁 나는 언니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민혜야, 나 옷 장사하려고."

"엥? 대학원 그만두려는 거야?"

"아니야~ 그럼 나 아빠한테 죽을걸."

"옷장사하는 건 아빠한테 안 죽어?"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옷이나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언니는 '재미로' 옷장사를 하기로 한다. 다만 부모님이 가만 안 둘 것이기에 나를 '바지 사장'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가짜 사장이 되었다. 내가 판매에 소질이 있으리라고는, 둘 다 예상하지 못했다. 언니는 그냥 자기가 갖고 싶은 옷들, 액세서리들을 신나게 떼어오기 바빴고, 나는 가게를 지켰다. 바지 사장이 굳이 판매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차피 아르바이트 인생이었으니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언니는 생각보다 판매를 잘하는 나에게 수입의 반을 통 크게 떼어주기 시작했다. 신이 나서열심을 내며 판매에 열중했다.

가을비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월요일이었다. 한 주의 시작이면서 조금 한가한 날이기에 옷들을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 한 분이 비장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내 앞에 니트 하나를 던졌다.


"저기요. 이거 얼마 전에 사간 옷인데, 보푸라기 좀 보세요. 못 입겠으니 환불해주세요."


몇 번 빨았던 흔적이 역력한 니트였다.


"네. 손님 죄송합니다. 구입하신 영수증 있으신가요?"


"저기요. 제가 영수증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냥 환불해 달라고요. 보푸라기 안보여요?"


"저 손님이 생각나는데요. 정말 죄송한데 한 달이 넘으신 걸로 기억을 하거든요. 영수증이 없으시다면, 카드 내역이라도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언제 샀는지가 뭐 중요해요?? 저 이 옷 한 번밖에 안 입었어요!!"


막무가내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난감했지만 이후로도 이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는다. 옷을 팔건, 술을 팔건, 음식을 팔건 앞뒤 없이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을 만날 수 있다.


"손님. 이 카디건은 여름 카디건이라, 저희가 지금 판매하고 있질 않아서요. 카드 내역이나 영수증 가지고 오시면 그때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욕이 튀어나오는 이런 순간에 내가 잘하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 시선 처리 그런 것들이다. 사람들은 돈도 돈이지만 '대접'에 예민하다. 당연하게도 자신을 무시할 수 있는 무리한 요구를 해놓고는, 예상대로 상대가 무시하는 말투나 시선을 보내면 곧바로 들이 받친다.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하고 그것을 기대하며 면면을 낱낱이 살핀다.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 사람을 살살 긁으며 생채기를 낸다. 아플 법한데, 이 정도면 맞받아 칠만 한데. 어라? 상대가 끝에 끝까지 진심으로 정중하게 굴면, 그제야 꼬리를 내린다. 애초에 목적은 공격이고 어쩌면 관심이기 때문이다.


판매할 때, 무엇을 파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물건의 질이 조금 떨어지고 올라가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읽는다. 판매를 하는 사람이나, 구입하는 사람이나 돈 만원에 목숨 걸지 않는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거나, 조금이라도 손해를 안 보겠다는 마음을 내면 상대 역시 그 마음을 읽는다. 이런 때 우리는 서로를 계산적으로 바라보게 되니 판매도 구매도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재고 따지며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구매를 결정한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이성이 아닌 감정이 움직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판매를 못한다면, 아이템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이다.

장사나 영업이 아니라도 우리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팔게' 되어 있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작은 사업이건 그 핵심은 영업에 있잖은가. 우리는 왜 판매나 영업을 우습게 생각할까? 사무직이라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몸담은 회사, 그리고 모든 기업들은 팔지 못하면 망한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 기업이, 회사가, 가게가 무엇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