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처럼 시작한 옷가게는 매 달 높은 매출을 갱신했다. 내 사업이 아니었지만 열성을 다했다. 나는 늘 가게에서 지금 팔고 있는 옷을 입었다. 손님들이 옷을 고를 땐 멀찍이 있다가 가만히 곁에 다가가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바지도 한 번 입어보세요~ 잘 어울리시면 이거 하나 더 챙겨 드릴께요." 티셔츠만 고르던 사람이 바지에 외투까지 사가는 일이 허다했다.
밤이 되면 여전히 바(bar)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에서 언니와 인연이 시작되기도 했기 때문이었을까. 실은 식구들처럼 챙겨주는 동료들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여성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바(bar)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새벽 3시면 배가 많이 고픈 시간이었다.
"민혜야. 이 것 좀 가져가서 먹어~"
주방에 계신 이모들이 챙겨준 퀘사디아 따위를 들고 작은 내 방으로 퇴근했다. 주로 술안주였지만 이렇게 음식들을 싸주시는 덕에 매일 배가 든든했다.
돈이 제법 모이고 있었다. 돈 쓸 시간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여성 고시원은 교보 문고 강남점 바로 아래에 있었다. 덕분에 틈이 나면 서점에 갔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속상할 때에도 교보문고에 가서 종일 책을 읽었다. 그 당시 읽었던 마지막 강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청소부 밥 이야기, 연금술사, 개미, 천사와 악마 등이 기억에 남는다. 특별히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대형 서점이라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얇은 책들을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읽어 내려가기를 좋아했다.
정처 없이 21살이 흘러가고 있었다. 재수할 돈을 모아서 기숙사에 들어가겠다는 포부와 달리 나는 그냥 매일을 살기 바빴다. 하루는 언니가 삼겹살을 사준다고 불러냈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입에 하나 넣자마자 언니가 다짐한 듯 입을 열었다.
"나 이제 대학원 졸업도 하고~ 엄마 말대로 유학 가려고 해."
"벌써 그렇게 됐네! 축하해 언니~ 유학은 원래 가려고 했던 거잖아"
"응 그래서 말인데, 민혜야 우리 옷가게 내놨어. 괜찮지?"
속으로는 내심 이렇게 잘 키워가고 있는 옷가게를 그냥 내버릴까 싶었다. 하지만 언니에게 이건 시작부터 끝까지 그냥 장난 같은 거였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상하고 속이 쓰렸다. 당시 장사에 재미를 붙인 나는 온라인으로까지 확장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비싼 보증금이며 옷들을 살만큼 돈이 있진 않았으니 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내가 하겠다고 말 한마디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관심 없는 척 태연한 척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에 난 상의없이 가게를 내어놓은 언니에게 섭섭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일대에서 워낙 장사가 잘 되기로 유명한 우리 옷가게는 금세 웃돈을 받고 팔 수 있었다.
때마침 내가 일하던 바(bar)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났다. 두 분의 사장님이 동업으로 선릉역에 바를 오픈한다고 하셨다. 나는 오픈 멤버로 가게를 도와드리게 되었다. 공사할 때부터 인테리어를 돕고, 사람을 뽑는 일까지 도맡았다. 두 분은 오랜 친구라고 하셨는데, 바(bar)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나는 매니저가 되어 발 벗고 가게 오픈을 함께 했다. 장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는데 월급이 제법 두둑했다. 사장님은 가게 공사부터 마케팅, 구인까지 그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
21살 내 가게는 아니지만 벽돌 하나, 하나 손수 올리듯 바(bar)를 오픈했다. 돈도 좀 모였기에 고시원에서 나와 월세로 집을 얻었다. 마치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오픈과 클로징을 했고 홍보도 열심이었다. 이번은 수입의 얼마를 떼어주는 게 아니었지만 잃을 게 없어서일지 젊음의 열정이었는지 즐겁게 가게를 키워나갔다.
두 분의 사장님은 모두 점잖고, 한 분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오랜 친구인지라 다투기도 하셨지만, 대체로 합심하여 나를 격려해 주시고 믿어 주셨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 더군다나 그때에는 못 마시는 술을 눈치껏 받아먹는 방법도 몰랐다. 회식을 해도 "저는 술을 못 마셔요."라고 이야기하고 음료수를 마셨다. 혼자 사는 젊은 여자가 바(bar)를 운영하고 있으니, 신나게 술을 마셔대는 일상을 상상하기 쉽다. 사실 나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일만 하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도 하는 성실한 20대였다. 누구는 "특별할 것 없는 너에게 왜 그런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을까?" 하고 물었다. 실은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저 운이 좋았다라기엔, 맞지 않는 구멍에 대답을 욱여넣는 느낌이다. 그때의 나를 가만 떠올려 보면 말이 없고 술도 안 마시고, 소처럼 일하고 긍정적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부려먹기 참 좋은 젊은 사람이었다. 돈을 떼먹거나, 조금도 허튼 욕심 낼 것 같지 않은 점도 한몫을 했다. 실제로 나는 남의 돈 1원에도 관심이 없었다.
매일 열심히 문을 열고, 문을 닫으니 옆집 사장님들과도 친했다. 가게 앞을 청소하면서 도란도란 대화 나누기를 좋아했다. 다들 젊고 열심히 사는 나를 예쁘게 봐주셨다. 이때의 경험으로 1년 반이 지나고 요즘 쓰는 말로 내 돈 내산, 나의 바(bar)를 오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되는대로 살고 있던 성실한 21살이었다. 지금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때엔 정말 조금도 거슬릴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