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인데 이상도 하지

남녀갈등?!

by 하민혜

아들 친구가 놀러 왔다. 이런저런 놀이 끝에 영상 하나를 시청했다. 티브이가 없는 관계로 노트북 앞에 모여 앉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안녕 자두야'였는데, 노상 혼이 나는 '자두'가 주인공이다. 아마 한국 만화지, 싶은데 딸을 구박하고 혼내는 엄마가 등장한다. 아들 친구는 연신 입으로 '엄마가 문제네.' '엄마가 너무하네'라고 말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될 터다. 이번은 밥을 차리는데 애가 셋이라 하나씩 그릇을 놓아줬다. 가까운 딸 먼저 그릇을 놓는데 쪽 찢어진 눈으로 나를 보며 "저는 왜 안 주세요?"라고 말했다. 눈빛이 매서워선지, 고단한 일정이었던 하루라 예민한 건지 칼에 벤 듯 했다.


어제 늦은 밤 가족과 산책을 했다. 가로등에 비친 낙엽이 아름다웠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이 딸을 짓궂게 타박하고 있었다. 반은 흘려듣고, 나머지를 들어선가. 남편이 지닌 여자에 대한 '상'이 아프게 다가왔다. 남편은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애증 섞인 보통의 부모자식 관계가 한둘은 아닐 터지만. 자신의 아버지처럼 피해의식을 가진 듯 보인다. 어머니가 곗돈이다, 뭐다 큰돈을 몇 번이나 잃었고, 젊은 시절 한량이었던 늙은 아버지를 여태껏 구박하고 있어서다. 더욱이 제법 돈을 벌으셨던 어머니는 씀씀이가 커서 툭하면 두 아들과 돈문제로 다투곤 했다. 남편은 어머니가 아버지와 아들의, 그러니까 남자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주버니 역시, 어머니가 쓰는 신용 카드 대금 때문에 여러 번 큰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그런 아들 앞에서 기절하는 어머니란, 강심장인 건지 타고난 여우 주연상이신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어떻든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음을 말한다. 원치 않는 결혼 후 술만 마셔대는 남편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아이 둘을 키운 점도 억울하고 열 통 터지는 일인 거다. 오죽하면 늦은 며느리를 붙들고 스스로 아들을 '버리지' 않았다고 수 댓 번을 말하실까. 이제와 말이지만 그 말은 내겐, 자식들을 '버리고 싶었다'고만 들렸다.


그런 어머니에게 자란 남편에게 여자란 무엇일까. 서른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를 않다가 나를 만났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일산에 한정식집을 운영하고 있었으니 그가 보기에 어땠을진 알 법하다. 나를 만나기 전 두 번의 짧은 연애는 여자가 하도 쫓아다녀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나에겐 유독 정성이고 미친 사람처럼 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사람이 결혼하려면 눈이 헤까닥 돌아야 가능하지 싶다.


함께한 11년 동안 느낀 건, 은근한 비난과 무관심, 의심, 표현하지 않는 애정이다. 어머니에게도 같지 않았을까. 나는 그의 인생에 두 번째 여자로, 첫 번 여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한지 모른다. 우리가 이혼을 준비할 때였다. 나를 붙들고 호소할 때 그의 원망은 어머니를 향한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가난 때문이든, 원치 않는 결혼이라서든 아들을 '버리고'싶었다고 본다. 버리고 싶은 것과 실제 버린 것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고 이야길 할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엄마에게 버림받는 기분을 노상 느꼈을 거다. 짐이 되는 기분,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 죄책감과 수치심, 불안, 두려움은 아내에게 투영됐다.


나와 별거 당시 남편은 거지나 다름없었다. 돈 한 푼 없이 쫓겨났다고 말해야겠다. 나로서는 별 수가 없었다. 아이 둘을 내가 키워야 했고, 아파트 대출이나 명의가 모두 내 것이었다. 둘이 함께 번 돈이라고 해봐야 쓰고 없었다. 남편은 결혼과 동시 빚을 키웠고 나는 아이를 키웠으니까.


그의 원망은 빚과 세금 덩어리들, 나와 아이들을 빚어냈다. 자신의 존재가 무가치하단 느낌,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 수치심과 죄책감, 분노가 폭발했다. 그때 나와 그는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온전히 상황을 보고 있지 않았다.


오늘 집에 놀러 온 아들 친구는 가까이 사는 친구다. 아들이나 딸이나 이유는 몰라도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죽 싫으면 그 친구가 지나갈 때 숨을 정도니까. 늦은 오후였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곤 부모님이 늦으신다고 말하며 집에 들어왔던 거다. 해석이 과했다는 걸 인정한다. 나로서는 남편이 품은 여자에 대한 원망과 조그만 남자아이의 것이 꼭 닮아 보였던 거다.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남편과의 문제로 내가 가진 '남자'에 대한 인식과 돈이나 사랑에 대한 관념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옷을 벗겨보면 상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딸과 아들도 다르지 않을 터다. 부모가 아무리 잘해준들 그보다 더한 건 마음을 주고받기 때문에다. 훈습이란 말이 있다. 훈제 고기처럼 부모님의 심정이 피우는 연기가 아이의 가슴에 스미고 만다. 부모 스스로 가진 피해의식과 자의식은 자녀의 삶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나나 남편도 부모이기 전에 아들이고 딸이 아닌가. 부모의 무의식을 답습하지 않도록 자기 성찰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내가 가진 생각, 관념을 의심하기 위해선 감정을 따라가야 한다. 평소 느끼는 불만과 언짢은 느낌을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왜 불편한 건지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봐야 한다. 이건 스스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이다.


남자는 여자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를 원한다. 필요하다기보단 원한다는 게 맞다. 그런 중에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은 부딪히는 마음이 들 수 있다. 젠더 갈등도 그런 까닭일 터다. 당연한 '생각'을 의심하고 자기 마음을 바로 볼 것, 깊이 볼 줄 알아야 한다. 분초 사회에 무리한 요구인지 몰라도 내가 나로부터 해방될 때,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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