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 많은 20대에 서점 가기를 좋아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는 일도 낯설지 않았다. 이만하면 책에서 그다지 멀어진 적은 없는 듯 하지만, 그때엔 막연한 동경 그리고 돌파구 정도였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아차렸다. 당시 주로 읽었던 책은 두껍지 않은 자기 계발서, 에세이, 이따금 손이 가는 소설류, 시집도 물론 있었다. 거의가 베스트셀러였다. 책을 읽는 엄마 손에 자랐기 때문일지, 어른이 되면 서점을 가야 할 것만 같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정표 없는 삶이 어지럽거나, 무료한 때에도 책을 손에 들었다.
대부분의 20대가 그렇듯 살기 바쁜 이유로 일 년에 대여섯 권 많을 때엔 열댓 권 정도 읽었지 싶다. 이만하면 책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었던 걸까? 희한한 것은 별다르게 취미가 없기 때문일지 주변 사람들은 나를 책 읽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생각해보니 책 선물을 잘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고 육아에 전념하다가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영업을 하게 되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20대의 대부분 장사꾼으로 살아온 나는 또 장사를 하려고도 했다. 헌데 아기를 업고 장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상하게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게 영업이었다. 결코 영업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라는 직분은 아이들이 젖먹이일 때에만 허용되었다. 그때에도 어쩐지 습관처럼 책을 읽었다. 주로 육아서였고 글을 좋아하는 나를 알아차리기는 어려웠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육아와 영업이라는 인생 최대의 난제 앞에 허덕이고 있었다. 느껴본 적 없는 행복감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낡아가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쯤 되니,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고통이었던 20대를 지나 고난이었던 30대가 여물어간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책을 손에 들고 있게 되었다. 그 즈음부터 지난 2년여 동안 일주일에 한 권, 많을 때엔 일주일에 세 권씩 책을 읽어왔다. 다독을 예찬하진 않는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도 한다. 어느 때에는 활자 중독인가 싶게 어제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아침에는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이젠 하루에 책 한 권씩도 읽고 있는 것이 새삼스럽다. 대강 읽는 것도 아닌데, 이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심지어 다시 읽고 또다시 읽기도 하는데 하루에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 실은 힘들지 않아서 많이 읽는 게 아니라, 정말로 즐기고 있다.
이제야말로 책을 좋아한다고, 애정 하는 취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전에는 무엇을 얻기 위해 읽었다면 이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관계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존경하는 최재천 교수님은 독서는 일이어야만 하고, 내가 모르는 분야, 읽기 힘들고 이해가 어려운 것들을 격파해 나가듯 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그 말씀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어려운 글이든, 재밌는 소설이건, 얻든 얻지 못하든, 읽는 행위가 일이든 일이 아니든, 책 읽기를 즐긴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잖은가.
한 달 전 즘 전범선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공리주의에 관련된 저서, 동물 해방 등을 모두 구해다 읽었다. 또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구했다. 즐기는 독서를 하는 중에도 전혀 관심 없던 분야에 호기심이 일고, 관련 저서들을 찾아 읽게 된다. 지금은 삶에 독서만이 순수한 열망이 일어나는 일인 듯하다. 책 읽는 행위는 영업이나 육아, 주부로서의 역할 등 모든 일에 연관이 있으면서도, 실은 전혀 관련이 없기도 하다. 무엇을 얻기 위한 행동이거나 기대하는 결과가 있지 않다. 처음 시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혼신을 다해 한 글자 한 글자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가들에게 감사를 그리고 존경을 드린다. 조그만 방구석 늘어진 티셔츠 바람으로도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시대를 움직이는 현인과 만나며, 사람들의 은밀한 속내를 훔쳐볼 수 있다니.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다만 한 생이 주어진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는 지금에 한 글자씩 눌러쓰는 종이책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천년이 넘도록 유구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활자에는 특별한 마법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씹고, 즐기고, 넘치다 못해 온 데 흘러 다니는 영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틈이 나면 책을 손에 들게 만드는 힘 말이다. 이 즐거움을 뒤늦게 알아서 아쉽고, 일편 이제라도 알았으니 남은 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김영하 작가는 가장 실패한 여행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모든 순간이 매끄러워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여행이라고 대답했다. 의도하지 않고 들어간 음식점이 좋았을 때,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끝내주는 경치에 여행의 맛이 있다고 했다. 비단 여행만이 아니라 삶이 그러하고 독서가 그랬다. 바라는 게 없어서, 얻으려는 마음 없이 책에 빠져들었을 때, 그럴 때 얻어지는 지혜, 깨달음, 성찰 등은 그 어떤 맛보다 깊고 진했다. 그렇게 독서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이 기막힌 맛을 누구에게나 맛보게 하고 싶지만, 그 길이 우연한 길이 아니라 의도한 길이라면 그 맛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 역시 시작은 의도를 가지고 이따금 손에 들었지만, 그 맛을 모르겠다 해서 책을 영영 놓지만 않는다면 좋겠다. 뇌과학자인 정재승 님은 인간의 뇌가 본래 글자 읽기를 지루해하고 어려워한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즐겁고, 재미를 느끼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뉴런(신경세포)이 연결되고, 새로운 길이 열리는데 이렇게 뇌가 변화하면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책 읽기를 영상이나 게임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뇌과학에서 이를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한 적은 없다. 아이들은 엄마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나도 어릴 때 엄마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금은 엄하셨기에 우리 아이들처럼 투덜대진 못했지만 말이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어느 날부터 책을 좋아하리라고 믿어 의심지 않는다. 성공하기 위해 서거나,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어도 좋다. 책을 통해 편협된 사고와 낡은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이따금씩 가슴속에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책을 읽음으로서 사람에게, 또 세상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깊이 삶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