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관객이다.
힘 빼고 사는 방법
오늘 아침 편지에 힘 빼기가 어렵다는 댓글에 답을 하고 싶어서요. 답글로 달자니 글이 길어질 것같아 나가는 중에 화면을 열었습니다.
아시는 내용일 줄 알지만 힘을 빼기 위해서는 몸 마음에 긴장을 알아차려야 해요. 알아차리기 위해라면 평소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게 우선입니다. (명상도 도움이 돼요) 어떤 상황이든 코미디 한 편 찍는다는 생각이 제법 유효해요. 망치더라도 코미디고 잘해도 웃긴 상황인 겁니다.
자기 삶은, 이 문제는 '내 것'이라 믿을 때 심각해지는데요. 시트콤이나 드라마, 영화를 생각해 보면요. 관계든 일이든 좀 망치고 자빠지는 게 별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관객이라면 그런 때야말로 카타르시스를 느끼죠. 편평한 전개라면 지루해 눈을 돌릴 겁니다.
나는 이 삶을 살아가는 '연극배우'이면서, 관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내가 있고, 꿈속에 억만장자가 된 나도 있어요. 반대를 경험하지만 '지켜보는 나'는 어디에나 존재하지요.
힘을 뺀다는 건 이 삶에 '해야만 하는' 일이 없다는 걸 아는 마음입니다. 관계를 잘 이어가야만 한다거나, 좋은 사람이어야 하거나, 아프지 말아야 한다던지, 오늘 죽지 않아야 한다거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걸 어서 눈치채시길 바라요. 내가 하는 게 아님을요.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건 어떤가요. 가만있기가 어려운 것은 생명의 본질이고요. 살아있다면 누구나 달리든 걷든 자빠지는 게 기본값입니다. 엎어지면 부끄러울 것 같지요. 기억할 것은 세상 모두가 저어기 앞서 달리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는 거고요. 가장 관심 있는 것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나를 무척이나 신경 쓰고 비난하니까 타인도 내게 그럴 것 같은 거예요.
"근데 저는 정말 00을 잘하질 못해서요. 더군다나 게으르기도 하고요. 우울합니다."
걷는 게 이상하다, 느리다는 건 '비교'에서 오는 판단이죠. 분명 비교 대상은 뒤에 있거나 엎어져 있는 사람이 아닐테고요. 빨리 가든 느리게 가든 결론은 같아요. 이 몸은 반드시 죽을 겁니다.
허무하자는 게 아닙니다. 무엇에도 심각할 필요가 없음을 알아야 이고 있는 짐을 덜 수 있어요. 엎어져 아프긴 해도 좌절하지 않아요. 가벼운 몸이면 애당초 덜 넘어지기까지 합니다.
될 대로 살자는 거 아닙니다. 우린 남을 아프게 할 때 결코 편안할 수 없어요. 나를 아프게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억지 희생이 아닌 사랑을 베풀면 돼요.
나는 '관객'임을 잊지 말아요. 오만하게 타인을 변화시키려거나 자기 스스로를 억지로 떠밀 이유가 없어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삶이 하는 것임을 기억하고요. 그저 이 마음이 불편해 '긴장'하진 않는지 살핍니다. 벌어진 일에 무게가 실릴수록 우리 걸음은 부자연스러워지니까요.
쉽게 말해 편안한 쪽을 선택하는 겁니다. 여기서 편안한 것은 편한 것과는 다른 이야긴데요. 편한 것은 관성에 젖었을 뿐이라서요. 편안한 건 뱃속 아래 숨을 마시고 내뱉을 때 남는 찌꺼기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호흡을 살피는데요. 몸 마음이 편안한 말과 행동을 선택합니다. 그 선택이라면 힘을 주는 편이 아닐 테니까요.
타인을 보지 않고 '나'를 보는 게 열쇠입니다. 눈이 바깥으로 달린 이상 쉽지 않을지 몰라요. 저라면, 새벽 명상과 늦은 밤 아이들과 명상한 지 3년이 넘었어요. 어느날부터 수시로 몸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는데요. 나를 살피고 행하면 남을 살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성과와 성취에도 수월해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어떻든 의연해진 게 더 큰 성과입니다.
가볍게 살자는 게 막살라는 말로 들릴 수 있어요. 막사는 게 편안하다면 그게 옳아요. 편한 것 말고 편안한 거요. 이것만 기억하셔도 좋습니다. 아무렴 이 생에 단지 성과를 올리려고 태어났을까요. 이 글을 읽는 그대가 기쁘고 편안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