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책임지기 위해 가져야 할 단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살다 보면 실패로 인해 패배감에 젖을 때가 있다. 분명한 낭떠러지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한 열등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다. 모자란데다 스스로 부족하단 자각이 들면 우주 먼지처럼 작아지는 것만 같다.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도장이라도 찍힌 양 얼굴을 들고 다니기 싫다.
외모에 신경을 써보기도 하고,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애써보기도 했다. 돈을 더 벌어보려 노력했다.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몰아붙인 적도 있다. 가만 보면 모든 게 패배감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뒤꽁무니에 따라붙은 꼬리표를 보지 않기 위해 앞만 보는 식이다. 아무리 멀리 가도 엉덩이에 붙은 열등감은 나를 따라왔다.
삶은 고된 것이 돼버렸다. 내 삶을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면 때론 더 작아지곤 했다. 모든 문제가 나 때문인 것 같아서다. 노력이 부족한가, 능력이 모자란가. 내 탓을 하다가 남 탓을 하기도 했다. 결혼만 안 했으면, 아이만 아니라면. 남편이 '이렇게만'해 준다면, 부모님이 00 하지 않았더라면.
반복적인 애씀은 더 많은 문제를 마주하게 했다. 의식은 과거로 갔다가 어두운 미래를 향한다. 문제의 원인을 찾는 데 혈안이다.
어느 만큼 삶에 지진과 폭풍을 겪고 재차 복구하며 살아왔다. 나나 너나, 세상이 보잘것 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즘 되면 대충 살자는 마음이 올라선다. 불안과 수치심을 감추고 무기력에 빠진다. 어차피 삶은 도돌이표라고 느낀다. 나란 것이 이렇게 생겨먹었다고 비관하는 마음에 삶을 해결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지난 몇 년 간 돌아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인정하려 노력했다. 원인을 찾고 해석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무기력은 결코 편안한 상태가 아니다. 달관한 듯보이지만 시한폭탄과 다르지 않다.
결론에 이르자면 문제를 겪지 않는 것보다야, 문제 앞에 태도가 삶을 결정하는 걸 알았다. 내가 헤매었던 이유는 문제를 피하는 데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금엔 하루에도 몇 번, '이렇게 해볼까'하는 생각이 오른다. 전부 실행할 수는 없지만 행동에 고민이 줄었다. 생각에 군살이 빠졌달까. 지체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내 엉덩이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문제와 함께 살아간다.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을 때, 어떤 일 앞에든 여여할 수 있다. 불평하지 않을 때, 탓할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