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내 탓이라는 게 더는 아프지 않다.
중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지금'이다.
3년 전 그 사람이 말했다. 부모님이 이혼해 놔서 너도 이혼이 쉬운 모양이라고. 서로 날을 세우고 있을 때라 보드랍게 들리긴 어려운 말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아니 몇 년이 지나서일까. 곰곰 그 말을 떠올려도 아프지 않았다.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기든 아니든 관계없다. 어떤 상황에도 무덤까지 가야 하는 게 결혼이라는 그의 말이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관계의 종말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이혼이 '나쁘다'는 관념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 사람의 말대로 가정환경 때문이라면 나는 자기 삶을 오롯이 살아가시는 부모님에게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이다.
세상 모진 말이란 말을 다 듣고도 헤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헤어지지 '못한'거라고 말할 테지만 나는 적확히 알고 있다. 모든 게 나와 너의 선택이라는 걸.
관계가 늘어지거나 망치기까지 나 혼자만이거나, 너 혼자만일 순 없다. 살고 보니 그렇다. 탓할 곳이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떠들라면 밤을 새울 수 있다만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원인이 아니라, '지금'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나를 험담하고 다닐 수 있다고 본다. 미적대는 나라면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그립거나 감사하는 마음에까지 닿는 중이다. 혼자 아이들을 감당하는 무게와 동시로 자유를 만끽한다.
상대방에게 매를 맞으면서 헤어지지 않는 지인이 있었다. 툭하면 울고 불고 신세한탄을 했다. 그녀가 헤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서 무언갈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거래랄까. 비뚤어진 사랑이라니 가소롭다. 나는 이런 관계가 사랑인지 아닌지를 밤새 논쟁할 자신이 있다.
사람마다 삶에 우선하는 가치가 있다. 정말이지 다른 생김새처럼 미세하게라도 차이가 난다. 닮아 보이는 사람이 있듯, 비슷해 보이는 가치를 지닌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녀로서는 그와의 관계에서 얻는 '무엇'이 자기 삶의 우선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었다. 그 가치를 꼭 그에게서 얻을 필요는 없지만 어디 가서 새로 얻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녀로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크다는 뜻이다. 더는 매 맞지 않을 수 있대도 그와 관계를 끝낼 마음은 없다.
헤어지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지금을 선택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책임을 전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의 주체로 설 수 있다. 내가 삶을 끌고 간다는 걸 완전히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문제일 수 없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내가 선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자세를 바로 할 필요가 있다. 고개를 숙이거나 쳐들 필요 없다. 맞서 싸울 게 아니다. 편안해도 좋다. 어떤 결정이라도 괜찮다. 이러나, 저러나 삶에 문제는 따라올 것이다. 단지 우리는 자기 문제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