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관계에 의무가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까? 그마저도 상대에게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혼했다면 다른 이성을 만나지 않는 게 의무라니, 사랑하면 해결될 문제다. 실시간 보고해야 하는 게 의무라면 대화로 어느 만큼 맞춰갈 일이다. 사실 잦은 연락은 만남이 길어지면 질수록 저절로 해결되기도 한다.
엄마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데 의무감을 가지면 엉뚱한 힘이 들어간다. 엄마 스스로 지닌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일지 모른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정작 나를 위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좋은 엄마이고 싶거나 괜찮은 남편이라는 평을 듣고 싶은 건 내 문제지, 상대를 위한 게 아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마음이다. 부족한 나를 가리는 데 활용해도 안될 일이고 모자란 나를 채우는 수단일 수 없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가치 그 자체로서 의미를 발한다. 결혼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해서 함께라고 말해야 한다. 좋은 엄마라서가 아니라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삐걱거리는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면 맞지 않아서거나, 다른 문제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모자라서다. 단지 상대에게 사랑을 구걸할 수는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뿐이다. 잘하든 못하든 상대 마음을 움직일 순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동의하고 합당한 책임을 다하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대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아이들은 해맑게 말했다. "엄마는 이혼하면서 왜 그렇게 아빠 편을 들어?" 인연이 끝나는 것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을 달라고 말할 수 없다. 아이들 앞에서든 둘이 함께든 다투지 않았다. 미운 것은 그가 아니라 부족한 나다. 더욱이 '미운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것은 내가 할 일이지, 그가 할 일은 아니다.
어느 날 딸은, 아빠와 엄마가 성격 차이때문에 이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담 세상에 성격이 맞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지 되물었다. 성격이 아니다. 문제는 사랑의 부재다.
이성 간의 욕망은 더 높은 사랑을 향해 나아가기 마련이다. 결혼 제도가 마치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사랑의 의무를 덧씌우는 것 같지만. 애초에 올가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되 사랑을 받으려 하면 할수록 서로가 괴로워질 것이다. 의무라는 이름으로 나를 움직이면 반드시 상대에게 실망하게 된다. 행위에 책임이라는 의미를 붙인 건 나다. 억지로 행하는 것은 결국 무언갈 받을 속셈을 내포한다.
상대를 위해서거나, 관계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칠 필요는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국 나 혼자다. 누구와 함께든 아니든, 결국 나는 나 하나를 데리고 살아간다. 인연은 억지로 끝을 내거나 이어 붙일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걱정과 불안, 죄책감, 수치심, 집착은 두려움에 비롯한다. 함께하는 상대가 있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탓하는 마음이 든다면 내가 붙들고 있는 '의무'를 돌아봐야 한다. 삶이 그렇듯 사랑은 의무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