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적인 사랑
우린 그런 걸 왜 받으려는 걸까요..
사랑이 사랑이기 위해 자격이 필요할까. 더 예뻐지려거나 돈이 많아지려는 것도 조건에 대한 모종의 암묵적인 합의가 아닌가 싶다. 나의 모습이 못났다고 느끼며 괜히 사람 앞에 나서기 수치스러울 때가 있다. 마치 이런 꼴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낙인찍힐 것만 같다.
매력 없는 사람이면 상대적으로 외모가 떨어지는 수도 있을 터다. 가꾸는 노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를 들어 잘잘못을 가리려는 게 아니다. 단지 타자가 나를 '예뻐서' 혹은 '잘 나가서' 사랑하는 거면, 우리는 그런 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지 의문이 든 거다.
수시로 아픈 사람이 있다. 하는 일마다 무너지고 잘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쉽게 말해 비극이 잦은 사람이다. 만날 울상이거나 짜증이거나, 분노하고 있달까. 처음은 연민이 든다. 물론, 끝에까지 연민인 적도 있었던 듯싶다. 말하고 싶은 건 이따금 그들이 사랑을 '구하는' 나름의 방식을 구가하고 있음을 느꼈다는 거다.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벼랑 끝에 모는 게 가능할까 싶다만. 사랑을 위해 인류를 구하는 프로젝트를 감행하는 것과 다를 게 무언가. 정반대로 나아가듯 보이지만 파괴와 창조 모두 사랑에 비롯한다. 비극을 자처해 타인의 연민을 구하려는 마음에 삶이 지지부진하는 일이 실제 벌어지기도 한다. 매일을 열심히 살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다가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우리가 바라는 게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일까. 바랐던 성공이 '사랑을 받겠다'는 마음이면, 세상 높이 올라갔을 때 바라는 사랑이 거기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명확히 무엇 때문에 헛헛한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만. 분명한 건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거다.
할 수 있는 건 지금 하는 말과 행동에 어떤 마음이 담겼는지 성찰하는 일이다. 고단한 일일 것 같지만 의외로 당장 삶이 가벼워진다.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울 때, 무언갈 욕망할 때 그 뒷면을 바라보는 식이다. 바라는 걸 성취했을 때의 나를 그리면 좀 더 쉽다. 나는 무엇을 구하는가. 혹여라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고 있진 않은가.
단순하게 나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이뤄도 허무하고 이루지 못해도 불행한 목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진정으로 바라는 건 성공이 아닌 셈이다. 원하는 걸 바로 알지 못한 결과는 처참하다. 나의 오늘은 일생이다. 헛헛한 목표에 시간을 쓸 때 버리는 것은 나의 인생, 목숨 그 자체다.
우리 모두가 매일 승리하고 있다는 '개리 비숍'의 말이 떠오른다.('시작의 기술' 저자) 말인즉슨 나락에 있더라도 그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몸소 갖은 고난을 겪는 일조차 무조건적인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일일지 모른다. 노상 괴롭더라도 괴로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곁에 연민이 일더라도 내 갈 길을 갈 것, 마음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관찰하며 알아차리는 태도가 우선이다. 나를 구렁으로 밀든 위로 올리든 오직 나 스스로가 만들고 있다는 진실을 문득문득 깨달아야 할 것이다.